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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세상과 교회를 잇는 나들목칼럼]예배하는 날을 안식일이라 부르는 이유

예배하는 날을 안식일이라 부르는 이유

밖으로

출애굽. 엑소더스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출5:3), ‘예배’입니다. Exodus는 ‘엑스’(~밖으로)와 ‘호도스’(길)의 합성어입니다. 애굽의 길에서 뛰쳐 나가, 하나님이 내시는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것이 출애굽의 참된 의미입니다. 애굽의 길은 노예의 길이고, 하나님의 길은 자유자의 길입니다. 노예의 길에서 벗어나 자유자의 길로 들어서는 엑소더스는 단순한 ‘탈출’이 아닌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잔혹한 피라미드 시스템

애굽을 상징하는 피라미드는 애굽의 정신과 구조를 드러냅니다. 착취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을 깔아주고, 그 위에 군림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등극하고, 그 위로 그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좁아지면서 결국 그 꼭대기 정점에는 단 한 사람의 권력자, 모든 것을 독차지하고 있는 파라오가 앉아 있습니다. 애굽의 길은 그렇게 타인을 내 밑에 깔고 발판삼아 어떻게서든 내가 더 높이 올라가 최대한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는 것, 노예가 되지 않기 타인을 노예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잔혹한 애굽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 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뛰쳐 나오길 원하셨습니다.

나일강 생명의 실체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은 나일강을 피로 물들여 죽음의 강으로 만드신 사건입니다. 나일강은 애굽인들의 젖줄로 그들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강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 나일강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던져 죽였습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이 추구하는 생명, 나일강의 실체입니다. 자기 생명의 견고함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갈아 넣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 타인의 죽음과 희생은 어떻하든 내 생명만 풍성해지면 그만이라는 지독히 이기적인 가치관. 그것이 바로 나일강 생명의 가치이자, 애굽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혼자 독차지하려는 나일강의 생명을 죽음의 핏빛으로 물들이십니다.

새로운 달력,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하나님은 그런 애굽의 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꺼내주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길. 하나님의 길.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로 인도해내십니다. 출 12:2절을 보면, 출애굽 구원의 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이 말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겐 이제 새로운 달력, 삶의 양식(라이프스타일)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애굽의 시간표에서 하나님의 시간표로 살아가는 것이 출애굽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시간표는 노예의 시간표입니다. 일어나면 벽돌 만들고, 그 벽돌로 끊임없이 피라미드을 쌓아 올리는 노동의 노예가 되는 시간표. 그러한 삶을 강요받는 것이 애굽의 시간표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렇게 노동의 노예된 삶을 살지 말라고 새로운 시간표를 주시는 겁니다.

그들을 자유인으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시간표, 그 핵심에는 <예배>가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날을 ‘안식일’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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