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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경건 (2) “하나님에 대한 바른 태도”

경건 (2) “하나님에 대한 바른 태도”

순례의 길을 걷던 크리스천이 “아름다움 Beautiful”이란 이름의 웅장한 집을 만납니다. 이곳은 순례자들의 휴식과 안전을 위해 지어진 집이라고 설명한 문지기는 크리스천을  안으로 안내합니다. 이 집의 식구들인 “슬기 Prudence”와 “경건 Piety”과 “자비Charity”가 그를 환영합니다. 환담을 하던 중에 경건이 크리스천에게 몇 가지를 질문합니다. 

   첫째는 순례의 삶을 선택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묻습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고향인 멸망의 도시에서 계속 살게 되면 자신도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두번째로 경건은 그에게 무엇이 고향을 떠나 순례의 길을 가도록 만들었는지를 묻습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라고 답하면서, 자신이 살던 곳에서 방황하며 멸망의 위협을 느낄 때, 전도자가 와서 이 집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길을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경건은 세번째 질문합니다. “해석자의 집은 들르지 않았나요?” 크리스천은 들렀다고 답하면서, 그곳에서 목격했던 평생 잊지 못할 세 가지 일을 나눕니다. 사탄의 온갖 속임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우리 마음 속에 지속되도록 계속 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며 죄를 짓는 사람, 심판날이 오는 꿈을 꾼 사람을 본 것이었습니다. 경건이 해석자의 집에서 본 것이 그것이 전부냐고 묻자, 크리스천은 “나무 위에 매달린 어떤 분을 본 것이 생각나군요”라며 이런 말을 합니다. “그분을 보자마자 제 등에서 무거운 집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매우 무거운 짐을 지고 심음하고 있었는데, 그 짐이 내게서 굴러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니겠어요?”

   이 이야기는 『천로역정』에서 저자 존 번연이 경건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경건의 첫번째 질문을 통해 사람은 모두 멸망하는 죄인인 사실을 깨닫는 것이 경건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질문을 통해 경건한 삶은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로 세워진다는 것을 알립니다. 세번째 질문인 해석자의 집에서 경험한 세 사건은 경건 생활에서 만나는 세 요소를 설명합니다. 경건 생활에 사탄의 훼방을 피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 삶을 지속하게 하며, 하나님의 자비는 죄를 이기게 하며, 또한 마지막 심판 때에 경건한 자의 믿음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해석자의 집에서 마지막 본 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체험은 크리스천에게 즐겁고 기쁨으로 경건의 길을 행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존 번연은 무엇보다도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이 경건임을 강조합니다.  

   경건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유세베이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는 신들을 향한 옳은 행동인 숭배와 이웃을 향한 올바른 행위인 정의와 자신을 향한 올바른 행위인 진실과  절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에 이 낱말의 사용은 그 근본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존엄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체의 행위,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의 방식, 그리고 건전한 그리스도교 진리에 입각한 역동적인 삶의 태도가 경건입니다. 순전한 신앙 (pure faith)의 태도인 경건은 다음과 같이 요약 될 수 있습니다.
  첫째, 경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능력에서 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광과 선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분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여 주시는 환영 (vision) 없이, 예수님의 도움 없이, 그리고 예수님의 임재 없이는 참된 신앙은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이 경건을  비밀이라고 설명합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신앙의 비밀인 경건의 질서를 사람들에게 알려 줍니다.  

   둘째, 경건은 삶에 어려움을 야기시킵니다.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자신의 경험을 나눕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삶에 박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경건의 가치와 목적이 세상의 그것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경건의 삶은 하나님을 그 삶에 초대한  상태이기 때문에, 박해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공존합니다. 모든 시련의 때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직면한 현실을 이기게 됩니다. 경건한 생활은 하나님의 능력에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방식입니다.
  셋째,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과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경건과 정직으로 일상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이렇게 기술했습니다.”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여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정중함으로 조용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다.”  경건의 삶은 하늘의 은혜와 영광을 자기 삶에 달라붙게 하는 원리이며,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해주는 비결입니다.
  넷째, 경건은 결코 물질적 번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물질적 성공의 방편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자기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은 경건의 가치를 버리는 것입니다.그렇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경건은 참 기쁨과 진정한 유익을 가져온다고 가르칩니다.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이 있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생명까지 약속해 줍니다.”  경건은 인간의 행복이 결코 물질적 소유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이 관계가 옳으면 삶은 진정으로 행복입니다.

   다섯째, 경건을 얻기 위해 사람은 분투하고 노력해야 하는 직무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무가치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시오.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 악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십시오”라고 조언합니다. “훈련하라”는운동 선수들이 사용하는 말이며, “좇으라”는 군인 사회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운동 선수인 동시에 군인입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을 위해 자신을 훈련하듯이,  군인이 최후의 승리를 향해 싸워야 하듯이, 그리스도인은 경건을 훈련하고 그것을 위해 담대히 맞서야 합니다.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특성입니다. 인간 사회의 미덕을 넘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신앙인의 성품입니다. 이 성품은 온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에 상응하는 태도가 대인관계에도 나타나는 삶의 형태입니다. 이 경건은 바울의 말에 잘 드러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누가는 경건하지 않는 자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라고 표현합니다. 그에 의하면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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