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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샬롬(2), 하나님의 평화

샬롬(2), 하나님의 평화

평화 혹은 평안의 의미로 사용되는 히브리어 샬롬은 성경의 낱말들 중에서 가장 풍성한 의미를 지닌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샬롬을 평안이라는 한 단어로 한정하는 것은 마치 한 개인을 주민등록증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름과 태어난 시기와 주소가 한 개인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요? 고대 근동어 사전인 렉시콘 (Lexcion)에는 샬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흠없슴,” “완벽,” “가득 참,” “복지,” “건강한 상태,” “구원,” “안전,” “선함,” “번성,” “완전 수행,” “완성,” “평화,” “만족,” “우정,” “고요함,”  등등입니다. 부르스 월키 박사는 샬롬이란 한 개인이 “흠이 없고 통합된 환경 속에 들어간 완전과 성취 상태,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상태다”고 설명합니다. 한 개인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때 나타나는 상태가 샬롬인 것입니다.  

   노아의 조상인 에녹이 기록했다는 글에는 샬롬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멸망하고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이 의인으로 화평하게 하시며 택하신 자에게는 평안과 화평이 있으리로다. 그들에게 긍휼이 베풀어지고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로다. 그들 모두가 형통하며 복을 받을 것이며, 그들에게 빛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평안을 주리라.” 이곳에서 평화는 심판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재판관의 자비와 관계됩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사회 지도자였던 필론은 샬롬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은 오직 그분께만 샬롬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오, 현명한 사람이여, 오직 하나님만이 가장 참되고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참된 평화이시며, 역으로 모든 창조물들과 소멸되는 것들의 본질은 지속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알라. 하나님의 근원은 자발적인 것이고, 창조물의 필멸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전쟁과 필멸과 창조와 붕괴를 잊어버리고, 창조되지 않은 존재이시며 본질이 자발적이시며 평화이시며 또한 불멸의 하나님께 나아 오는 사람은 정당하게 하나님의 성 (평화의 장소) 그리고 하나님의 거처지라고 불러지게 된다. 그러므로 평화의 장소에 관해 말하는 것과 하나님의 임재에 관해 말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둘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많은 이름으로 구별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의 동반자일 뿐만 아니라 가장 뛰어난 능력이기 때문이다.” 

   주전 2세기에 쓰여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내용에 샬롬은 종족전쟁과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편지는 미덕은 선한 행위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악을 물러나게 하는 요인인데, 미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전쟁 중에도 영혼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싸우고 돌보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악을 이기게 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시키는 샬롬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분만이 공급합니다. 이러한 샬롬의 개념은 시편의 신앙에도 흐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니, 주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입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춥니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봅니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 시의 저자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성품이 지상에 완전한 평화를 이루는 원인으로 간주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렸던 천사들의 언어는 인간 삶의 참 평화는 주님께서 주신다고 설명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여기에 언급된 평화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전쟁이나 싸움이 끝난 후에 경험되는 평화가 아니라 죄인된 인간과 거룩한 하나님 사이에 형성되는 평화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열린 인류 구원에 관한 평화입니다.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바리새인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구원에 관해 몰랐던 것입니다. 사가랴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할 때도 평화는 곧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의미했습니다. 

   구원을 의미하는 샬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이 평안은 예수님께서 그 생애 동안 보여 주셨던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갈등이나 고통 혹은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움이 더 심해질수록 예수님의 평안함은 더 뚜렷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끌어낸 평안입니다. 

   주님은 그 자원을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샬롬은 사람이 받거나 거절할 수 있는 평화입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어서  거절하게 되면 평화를 주는 자에게 돌아 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를 맨 앞에 놓았습니다.   

   이웃과 화평을 이루는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샬롬을 받았고 그래서 이웃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 생활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은 하나님의 샬롬을 만드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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