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Bread,” 최고질의 삶의 요소
빵은 단지 성경에서만 쓰이는 낱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서 빵은 어떤 행태로든 발견됩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만들 때 빵을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북미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는 햄버거와 같은 빵으로 만든 음식을 판매합니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행사 때 음식으로 커다란 쟁반 위에 다양한 샌드위치를 쌓아 놓습니다. 빵 위에 얇게 썬 훈제 생선, 신선한 야채, 과일, 계란, 치즈, 등 거의 모든 것들을 올려서 샌드위치를 만듭니다. 이런 샌드위치 모음이 스웨덴 사람들의 뷔페식 상차림인 스모르가스보르드 (smorgasbord)입니다. 프랑스 빵은 야구 방망이 모양입니다. 쉽게 운반할 수 있고 신선 할 때 먹으면 맛있습니다. 빵 속에 야채를 많이 넣어 건강 샌드위치로 알려진 써브웨이는 원래 잠수함 샌드위치 (submarine sandwich)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빵은 대부분 국가의 식탁에서 주요 음식의 일부입니다.
쇠퇴하던 로마 제국에서 국민들의 기본 음식은 빵이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사회를 풍자했던 시인 유베날리스 (Juvenalis)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로마 정부는 시민들이 오직 두 가지 열망을 갈망하게 했다. 빵과 콜로세움 경기였다.” 수많은 동요는 빵을 주제로 쓰였습니다. 영국의 대표 동요 책 『6 펜스 노래 부르자』에 “여왕은 응접실에서 빵과 꿀을 먹고 있다,” “작은 토미 터커가 저녁을 위해 노래한다.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줄까요? 흰 빵과 버터”와 같은 것들입니다. 고대 유대인 공동체에서 손님을 초대한 주인은 식탁에 놓인 덩어리 빵을 들어 올리며, “이 땅에 빵을 공급하시는 우주의 왕, 우리 주 하나님께 축복합니다”고 외칩니다. 그러면 식탁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멘”이라고 답합니다. 그 후 주인은 빵을 떼서 각각의 손님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주면서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빵” (우리말로는 떡)으로 번역되는 히랍어 “아르토스”는 성경에서 매우 자주 사용됩니다. 이 낱말은 일상적인 생활 용어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아르토스”는 네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일용할 양식을 지칭하는 말로 누구나 이용하는 낱말이었습니다. 빵은 땅에서 나오는 밀이나 보리 가루를 소금과 물로 반죽해서 효소를 넣거나 혹은 넣지 않고 그것을 솥이나 쇠로 만든 용기 속에 넣어서 구워 만듭니다. 보통 가정에서 식사할 때 빵을 가져와 감사를 표하고 떼어서 식탁에 함께한 사람들이 나눠서 먹었습니다. 보리 빵은 질이 더 떨어진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었습니다. 성전에 드려진 진설병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은 “아르토스”였습니다.
둘째, 빵은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영양분을 상징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탕자는 자신의 상태가 굶주려 힘겨울 때, 자기 아버지의 집에는 종들에게도 빵이 충분히 제공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종들의 신체에 필요한 영양분이 늘 제공된다는 의미입니다. 탕자 이야기에서 빵은 신체를 위한 자양분과 같은 것입니다.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노동에 관한 윤리를 언급할 때 이런 원칙을 제시합니다. 자기 음식은 자신이 일한 대가로 먹고, 대신 일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음식, 즉 “아르토스”는 역시 육체의 필요를 상징합니다.
셋째, 빵은 영적인 중요한 요소로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 (빵)”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떡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할 때 하늘에서 내렸던 만나와 비교합니다. 뿐만 아니라 만나를 내리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늘에서 참 떡이신 예수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참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떡을 먹는 자는 영생하며,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넷째, 빵은 보상을 의미합니다. 주후 96년에 기록된 클레멘트 서신에 “아르토스”에 관한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선한 일꾼은 자신의 일의 떡을 담대하게 받지만 게으르고 부주의 한 사람은 그의 고용주의 얼굴을 감히 보지 않습니다.” 이 문장에서 떡은 일한 사람이 받는 보상을 뜻합니다. 누가복음의 저자가 언급한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에서 떡은 보상과 관계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그 나라의 통치자가 전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호의와 잔치를 보상으로 받는다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주기도문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해석하면서 “아르토스”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제공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음식,건강한 신체,좋은 날씨,집,가정,아내,자녀, 좋은 국가, 평화와 같은 것이 아르토스다.” 양식으로 번역된 “아르토스”는 인간 삶의 전 영역에 필요한 최고질의 요소입니다. 주기도문에서 “오늘”이라는 히랍어 “에피우시오스”는 “생명이 있는 날”을 의미합니다. 한 개인에게 생명이 있는 한 언제나 오늘입니다. 내일도 그리고 미래도 나에게 생명이 있으면 “오늘”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 인생의 평안과 복된 삶의 근원이 하나님이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삶의 필요의 원천인 빵의 주인께서 공급해 주실 때 인간 삶은 가장 아름답고 풍요롭습니다. 야고보는 이 진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모든 선한 행위와 완전한 선물들은 빛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