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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떠나보냄과 새 출발,” 용서

“떠나보냄과 새 출발,” 용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 작품과 민간 전승물에는 용서를 주제로한 내용이 가득 찼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용서하는 사람은 싸움을 끝낸다”가 있습니다. 영국 격언에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가장 고결한 복수는 용서하는 것이다.” 헨리 비처는 “나는 용서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잊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찬송 작가 앨리스 캐리는 “이 잃어버린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용서만큼 확실하게 하나님의 아들의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고 썼습니다. 교육자이며 소설가인 한나 모어도 비슷한 감정을 나타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분개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이 더 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용서는 분노의 비용, 증오의 비용, 영혼의 낭비를 줄여준다.” 용서에 관해서 깊은 주의를 기울였던 C. S.  루이스는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용서할 사람을 직면하기 전까지는 용서는 훌륭한 일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간 용서의 토대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기독교 영화 제작자 빌리 제올리는 용서에 대해 “우리 하나님은 큰 지우개를 가지고 계신다”고 묘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용서를 이렇게 공식화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 가장 짐승 같고, 남을 판단할 때 가장 인간 같으며, 원수를 용서할 때 가장 하나님 같다.” 청교도 설교자이며 작가로 잘 알려진 존 오웬은 용서에 관해서 이렇게 진술합니다. “가엾은 영혼들은 책에서 읽고 혹은 사람들에게 들은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 선했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죄 용서함이 아닌 다른 길로 천국에 오르지 못한다.” 존 번연은 용서에 관해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용서받지 못할 정도의 죄는 짓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비는 너무 커서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죄를 사하심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용서”로 번역되는 고대 희랍어는 “아피에미”입니다. 이 낱말의 문자적인 뜻은 “멀리 보내다,” “내 쫓다,” 혹은 “너그러이 봐 주다”입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는 인간 사회에 해로운 물건이나 사람을 멀리 떠나보낼 때 “아피에미”라 했습니다. 이 단어가 사람과 관계해서 사용될 때는 “법적인 구속에서 풀어준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단어가 발전하여 후에는 누군가를 손상의 책임, 부채, 결혼 서약, 또는 종교적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최종 형태로, 이 낱말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처벌에서 해방되는 원리로 채택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성경에서 “아피에미”는 죄수를 석방하거나 채무자의 빚을 갚을 때 사용됩니다. 그 결과로 얻게 되는 해방과 자유의 새로운 출발이 용서에 포함됩니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아피에미”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관대함입니다. 시편 저자들은 인생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크고 풍성하다는 특성을 강조합니다. 용서의 가장 위대한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의 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왔을 때 그는 인간에게 용서의 필요성을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확인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류 마지막 날에는 전세계에 용서를 선포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듣는 자들이 용서의 자리에 나오도록 초대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용서라는 주제는 사도들이 전한 설교의 전체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은 또한 예수를 믿기 위해서 죄 사함을 강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의 사역도 용서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용서의 기능이 현실로 작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죄입니다. 죄는 고대 히랍어로 “하마르티아”인데, “과녁을 벗어나다”는 뜻입니다. 창이나 화살을 사용할 때 목표물을 벗어나면 “하마르티아”라 했습니다. 죄란 목표물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벗어났을 때도 죄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창조된 처음 인간은 심히 아름다웠습니다. 건강했으며, 거룩했으며, 평화가 충만했고, 즐겁고,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이 아름다운 목표를 향해 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그런데, 요즘은 좋은 것보다는 악한 것들이 우리들 주변에 더 많이 보입니다. 죽음을 부르는 질병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흉악한 범죄가 성행하며 사람사는 곳은 평화보다는 싸움이 더 많습니다. 인간이 창조질서를 벗어난 증거입니다. 엘머 토운즈는 목표를 벗어난 인간의 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순결함을 부정하는 죄로 인해 인간은 불결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하는 죄로 인해 인간의 영혼에 혼란이 왔다.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죄로 인해 인간은 범죄자가 되었다.” 성경은 이 죄를 용서받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가르칩니다. 악행자를 용서하는 것이 곧 우리의 죄를 사함 받는 길입니다.

   용서는 해로운 것을 멀리 보내고 그 결과 얻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내 영혼의 독이 되는 원한을 밖으로 내보내야 새로운 출발이 있다는 이 원칙은 “아피에미”라는 평범한 단어가 품고 있는 장엄한 영적 가르침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성경은 우리의 용서가 선행될 때 하나님의 용서가 뒤따르는 인간의 공로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의 삶 속에 용서와 병행되는 은총의 흐름을 지속하기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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