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아! 그런뜻이었구나 “순전한 신앙,” 순종 (1)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순전한 신앙,” 순종 (1)

“순전한 신앙,” 순종 (1)

유대 종교는 외형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종교 생활을 위해 유대인들은 듣고 배우기도 하지만 시각적 현상을 더 중요시하며 신앙의 본질로 이해합니다. 정결한 신앙을 위해 손과 가정 용품들을 부지런히 씻었으며, 경건한 신앙을 위해 사람들이 다 보는 길가에 서서 기도하고, 심지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사회 지도자 필로는 듣는 것과 보는 것은 구별된다고 언급하면서, 전자는 그릇된 길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기만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천사가 하갈에게 한 말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는 신성한 훈계에 의해 교정된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남자 아이를 낳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들으심’을 의미하는데, 듣는 것은 보는 것 다음이 되는 2등의 상을 얻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보는 것은 합법적인 상속자이며 장자 이스라엘에게 속한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본다’는 뜻이다. 사람은 거짓 말을 참인 것처럼 들을 수 있고, 듣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열등한 것이다. 그러나 보는 것은 속일 수 없는 감각이며,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등한 것이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는 가치가 없고, 눈에 보이는 세계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도 보이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신들의 신성한 일들은 특수한 광경의 출현으로 전해진다고 믿었습니다. 주후 2세기에 활동했던 고대 로마의 소설가 아풀레이우스는 그의 작품 『황금당나귀』에서 신들의 계시를 언급합니다. 그는 많은 계시들이 신들로부터 인간들에게 전수되는데, 신들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는 특별현상을 보여줌으로 전달된다고 기록합니다.

   이에 반해 성경적 신앙은 보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들음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종교입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한 것과 관련하여, 다른 종교들처럼 “하나님을 본다” 혹은 “그분의 얼굴을 본다”는 표현도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표현은 실제 나타난 형상을 봤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초자연적인 일들의 발생과 경험을 나타낸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했다는 표현과 그분의 형상을 봤다는 묘사도 직접 본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너무 강하게 느낀 상태를 하나님과 대면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때는 오직 종말론적 사건인 주님의 재림시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곳에는 말씀의 계시를 위한 배경이 놓여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말씀은 몸의 현현이 아니라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말씀을 전하시고,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전한 신앙의 진술은 “주의 말씀을 들으라,” 또한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입니다. 듣는 것이 성경적 신앙의 정수 (essence)입니다.

   “듣다”는 히브리어 낱말은 “샤마”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말씀”이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과 계획된 일들을 드러내신다는 내용을 포함합니다. “샤마”는 이스라엘 백성이 단지 듣는 단계를 넘어 말씀에 반응하는 태도와 밀접한 관계를 제시합니다. “샤마”를 번역한 희랍어는 “아쿠오”입니다. “듣다” 혹은 “순종하다”로 번역되는 이 낱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인들의 중대한 반응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상호 관계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의 내용을 사람이 그들의 삶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태도를 “아쿠오”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들음은 곧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사람들의 삶에 적합하게 나타나는 본질적 형태가 “아쿠오”입니다. 즉 성도들의 순종은 곧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시각으로 이해하거나 구별하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것을 준수하는 것이 사람의 옳은 자세입니다. 미가서 선지자는 참 신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일상적인 삶 속에서 신앙인의 순종이 하나님의 선을 이루게 됩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실제적으로 실현되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마가복음은 이 비유를 “들으라”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이 비유는 듣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네 종류의 땅은 말씀을 듣는 네 종류의 사람입니다. 첫번째 땅은 길가로, 씨가 뿌려 졌으나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립니다. 둘째 땅은 흙이 얇은 돌밭으로, 뿌려진 씨가 싹을 틔우지만 해가 돋은 후에 곧 말라버립니다. 셋째는 가시덤불 속으로, 가시들이 뿌려진 씨에서 자란 싹을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네번째는 좋은 땅에 씨가 뿌려졌습니다. 누가복음은 네번째 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표현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켰다는 희랍어 “카테코”는 말씀을 지키는 일에 종사했다는 뜻입니다. 이 낱말은 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다 해 국가를 지킨다 뜻도 있습니다. 결국 이 비유는 듣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비유의 끝에 누가는 다음 말씀을 더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한 순종이 듣는 것입니다.  

이남규 목사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