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상돋보기] 백마 탄자(계 6:2)와 백마 탄 그리스도(19:11)를 구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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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자(계 6:2)와 백마 탄 그리스도(19:11)를 구별하라

여러 이단 단체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백마 탄 자를 교주에게 임한 예수님의 영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말들은 육체”라는 이사야(31:3)말씀을 문자적으로 인용하여, 말은 육체 곧 교주의 육체를 가리키고, 그 육체에 예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이 말타는 것이라 해석하여 말탄자는 예수님의 영이 교주의 육체에 임한 특별한 보혜사라 주장한다. 그래서 여러 교주들은 흰 양복을 입고 백마를 타고 사진을 찍곤 하였다. 자신이 바로 계시록을 실재로 성취한 자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계시록에 2회(6:2, 19:11) 등장하는 백마 탄자를 모두 예수님의 영이 임한 교주로 해석한다. 

하지만 6장의 백마 탄 자와 19장의 백마 탄 자는 다른 존재이다. 19의 백마 탄 자는 그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19:11), 만왕의 왕(19:16), 만주의 주(19:16)로 예수 그리스도를 명확하게 가리킨다. 반면 6장의 백마 탄 자는 그리스도와 다른 자다. 먼저, 그는 왕관(헬. 디아데마)이 아닌 면류관(헬. 스테파노스)을 받은 자다. 면류관은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전장에서 공적을 남긴 자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영예다. 반면 왕관은 왕권을 갖고 통치하는 자가 쓰는 통치와 권력의 상징이다. 19장의 백마 탄 그리스도는 많은 왕관(헬. 디아데마)을 썼다. 둘째, 6장의 백마 탄 자는 이기고 또 이기려는 자다. 이긴 자가 아닌 것이다. 끊임없이 승리를 노리며 제국을 넘보고 위협하는 세력이다. 반면 19장의 백마 탄 그리스도는 순식간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불못에 던져 넣으시고, 짐승의 군대를 궤멸시킨다(19:20-21절). 셋째, 6장의 백마 탄자는 활을 무기로 가진다. 19장의 그리스도가 입에서 검이 나오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는 당시 로마 제국을 호시탐탐 노렸던 유브라데 강 동편의 파르디아 제국의 위협적인 궁수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렇게 볼 때 계시록 6장과 19장의 백마 탄 자는 다른 존재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말이 곧 육체’라는 이들의 기이한 비유풀이식 해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말’을 ‘육체’로 풀라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며 쳐들어와도 그말들은 한낫 육체 즉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뜻이다. 감히 영이신 하나님 앞에 상대도 되지 않는다. 이를 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이집트 사람은 사람일 뿐이요,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군마 또한 고기덩이일 뿐이요, 영이 아니다. 주님께서 손을 들고 치시면, 돕던 자가 넘어지고, 도움을 받던 자도 쓰러져서, 모두 함께 멸망하고 말 것이다”(사 31:3, 새번역). 말은 말에 불과할 뿐이지, 사람이 아니고 보혜사도 될 수 없다. 이제는 백마 탄자(6:2)과 백마 탄 그리스도(19:11)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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