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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런치칼럼] 위대한 코치, 빌리 그래함

위대한 코치, 빌리 그래함

길거리에는 이젠 붉고 노란 잎들이 가득해서 가을의 정치가 물씬 드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자연도 성숙한 계절이 돌아 오면 그렇게 아름답게 그 모습을 드러내듯이 아마도 사람들도 푹 익은 성숙한 크리스천들은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는 지점을 향하여 오늘도 쉬지 아니하고 전진하는 이들일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의 목표지점으로 모든 리더들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코칭’ 이다. 코치의 시기 적절한 파워풀한 질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평소에는 잘 두드리지 않았던 내면의 의식을 깨우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빙하로 비유를 들 때,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빙하의 모습을 전부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의 약 10% 밖에 되지 않는 부분일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는 평소에 쓰지 않는 잠재의식이 있는데, 이를 두드리고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하게끔 이끄는 리더십을 ‘코칭’이라고 한다. 이를 통하여 개인적 혹은 조직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코칭의 대상이 목표와 비전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빌리 그래함은 본명이 윌리엄 프랭클린 그래함 주니어로  1918년11월7일 노스 캐롤라이나 주 샬롯에서  윌리엄 프랭클린 그래함과 모로 코피 그래함의 네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매일 성경을 읽을 것을 요구했으며, 신실한 장로교인이었던 어머니는 빌리가 설교자가 되는 길을 기도로 닦아준 믿음의 사람이었다.

1934년, 빌리의 나이 16세에 그는 샬롯에서 있었던 순회 전도자 모더카이 햄(Rev. Mordecai Fowler  Ham) 목사의 부흥 집회에서 회심을 경험하게 된다. 그 때 모더카이 햄은 지옥과 심판에 대한 내용의 설교를 함으로써 빌리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고 그 설교 말씀을 들은 후 그는 크게 회심하게 되고 그 결과로 그는 평생 설교자의 길을 걷게 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빌리 그래함은 휘튼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부터 세계적인 전도집회들을 인도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목사가 되었으며 1949년 LA 집회를 통해 스타 부흥사로 떠올랐다.

1950년, 그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빌리 그래함 전도 협회를 설립해서 미국 복음주의 운동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부흥 집회를 이끌었다. 또 그는 매주 “결정의 시간” 라디오 프로그램과 “Decision” 잡지를 출판했으며, 기독교 네트워크를 위한 TV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또 그의 생애 동안 34권의 책을 썼으며 자서전 “Just As I Am.” 내 모습 이대로는 그의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일생 동안 400번이 넘는 전도집회를 전세계 6개 대륙을 다니며 185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목사로 평가받고 있다.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며 2억 명에게 직접 설교 했으며 라디오, TV, 잡지, 책, 신문 칼럼, 위성방송, 인터넷 방송으로 메세지를 들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22억 명이 넘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국과 관련해서 빌리 그래함은 한국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 그는 1952년부터 꾸준히 한국에 와서 전도 집회를 이끌었고 1973년 방문한 서울 여의도 전도집회에서는 110만명이 모이는 최대 기록을 세웠다. 당시 그 집회에서 2만 명이 결신하였다고 한다. 빌리 그램함 목사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전도의 날”이라고 감격했었다고 한다. 그는 1992년과 1994년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20세기의 복음 전도자로 알려졌던 빌리 그래함 목사는 2018년 2월 21일 노스 캐롤라이나 몬트리트에 있는 그의 집에서 99세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묘지는 지난 2007년에 별세한 부인 고 루스 그래함 곁에 묻혔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떠나고 나서 전세계 사람들과 언론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를 여러 각도에서 평가했다. 그는 유머 감각이 뛰어났고 스캔들이 없었으며, 윤리적으로 깨끗했던  사람이었다. 또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은 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가장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고 결식 아동을 돕는 자선활동과 빈곤퇴치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기독교적인 견해를 유지했던 가장 위험한 타협자였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기독교와 반대편에 서있는 공산주의와 카톨릭과 종교 통합 등 세 가지를 모두 흡수하고 실천했던 위험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또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밋 롬니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지탄을 받게 되었고 또 몰몬교를 이단이 아니라고 표명하며 미국 기독교계의 강력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랄한 비판과 존경을 한몸에 받은 빌리 그래함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살다간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유명 할수록, 영향력이 클수록, 또 삶의 길이가 길수록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고 또 상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빌리 그래함이 남긴 신앙의 유산에 대한 평가도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에게 다채로울 수 밖에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한 시대를 특별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를 통해서 주의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평가하실 것이다. 마지막 주님 앞에 섰을 때 진정한 평가를 알게 될 것이다.

탁월한 선교적 코치로서의 삶을 살아온 빌리 그래함에게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기 힘든 바로 그 영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코칭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열정’ 입니다. 성경 속의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도 가슴 속에 깊이 숨겨 놓은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 그것은 주변의 상황에 동요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귀를 기울이고자 했던 것이다. 빌리 그래함도 그 열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품게 되고, 현재의 상황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 보면서 맡겨진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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