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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런치칼럼] 사도 바울의 코칭라이프

사도 바울의 코칭라이프

하루의 일상이 반복되는 속에서도 매일 새롭게 하루를 창조해 가는 노력과 열심이 있다면, 그 하루는 멋진 날일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이야기는 사도 바울의 코칭적 삶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사도바울은 소아시아 길리기아 지방 현재의 터키의 중심 도시인 다소에서 기원 후 5년쯤 베냐민 지파 유대인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 혈통의 가멜리엘 문화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유대법에는 다섯 살이 되면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열 살이 되면 율법 전승들을 공부해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바울도 이 규례를 따라 다섯 살 때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열 살 때에 유대교의 중요한 문헌들을 암송하고, 구약성서, 율법해석, 수사학 등을 공부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러한 체계적 신학 교육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유대 전통인 율법을 비판할 만큼 뛰어난 신학자로 자라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제자였고 회심하기 전까지 바리새파의 열심 당원이었습니다. 또 고대 그리스 문학에도 밝아서 고대 그리스 문학을 인용하여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남부러울 것이 없이 부와 명예를 가졌던 사도 바울, 그의 터닝포인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바울은 스테반의 순교 이후 기독교인들을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권한을 받아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신비로운 예수의 출현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 사도 바울의 회심 이후에도 그를 만나기를 두려워했을 정도로 그는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난 후 그는 자기가 이전에 보배로 생각했던 세상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한번도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어 핍박을 받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예수님을 본 적도 없으면서 사도 행세를 한다는 것과 바울의 회심을 믿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고 또 초대교회에는 유대교 전통을 강조한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교 전통을 거부한 이방 그리스도인으로 구분했는데, 바울은 이방 기독교의 지도자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 야고보 등의 기존 사도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충돌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 기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일치하지 못하고 유대 율법 준수를 놓고 신학적인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3회에 걸쳐 대 전도여행으로 로마에까지 그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는 전도 여행 동안 수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의 강직한 성격은 결국 십자가로 세계를 정복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회개 시키고, 이방인의 마음을 감화시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였습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그가 오직 주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사도바울이 드디어 주위의 계속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죽음이 한 발 차이인 위험천만한 도시 예루살렘 행을 강행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에는 생명의 위기를 느끼는 극적인 순간이 많았지만 아마도 회심 이후 가장 극적인 순간은 예루살렘으로의 전도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누구나 죽음을 예상할 수 있는 그 길을 묵묵히 갔고 결국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2년 동안 셋집에 머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주후 67년경에 네로 황제에 의해 투옥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는 신약성서의 대부분인 13권을 썼을 정도로 그의 높은 학식이 더욱 빛을 발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굳히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로마서와 같은 당당한 논설은 도저히 그 세대 사람으로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체계를 갖춘 글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함과 사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르켜 죄인 중의 괴수,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자라고 자신을 평가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지, 정, 의가 풍부한 사람이었고, 훌륭한 사도로서, 신학자로서, 전도자로서, 오늘의 기독교가 있게 한 기독교 형성 사상 가장 중추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시대에 부와 명예와 권세를 가지고 편안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삶을 살다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주님을 위해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사도바울의 생애는 마치 크리스천 코치로서의 삶을 남겨 놓은 듯 합니다. 크리스천 코치로서 타인들을 세우고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이 원하시는 자리까지 옮겨 가도록 옆에서 함께 뛰는 파트너로서의 삶을 살아 간 바울을 뒤돌아 볼 때,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떠한 타이틀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탁월한 코치로서 마지막에 남겼던 그의 말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한 그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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