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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늘향한책읽기] 에슬리 헤일스_작아서 아름다운

하늘향한책읽기_에슬리 헤일스, [작아서 아름다운], IVP, 2023.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요청되는 시대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한계를 극복하여 최고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성장하고 번영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부축인다. 작게 시작할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커져야 복을 받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 잘못되고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치부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저자는 시대적 흐름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는 원초적인 방법이 있음을 제시한다. 더 크고, 더 발달하고, 더 멋진 것을 추구하는 것이 그럼 잘못된 것인가? 수퍼맨, 원더우먼, 헐크 처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수퍼히어로를 좋아하고 그들로부터 대리만족을 얻고 있지 않는가? 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저자의 조용하고 작지만 그녀의 분명한 소리를 듣게 된다. 

저자는 ‘한계란 좋은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몸, 성격, 장소, 관계망, 책임질 대상 등에서 모두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능력과 권한도 유한하고 일과 건강과 믿음도 때에 따라 달라지며, 시간과 주의력과 소명도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사회학적으로 선택과부하라고 하여 고를 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선택장애가 오는 상황이 되어 소위 결정피로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는 멋진 삶에 필요한 것이 더 많은 선택지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침과 길라잡이이며 앞길을 보여 줄 적절한 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무엇이나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내게 있다고 더 멋진 삶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한계를 성공의 걸림돌이 아니라 형통을 위한 선물로 생각하는 것이 여유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말한다. 이 한계라는 선물이 바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 빛과 어둠, 바다와 육지 등의 이름 속에도 피조물의 분수와 한계가 담겨있다. 행성은 아무 데로나 가서는 안 되고 궤도대로 돌아야 한다. 식물은 사철의 한계에 따라 성장하고, 동물은 제한된 서식지 내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한계를 정해주지 않으면 자연계는 혼돈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한계를 죄의 결과나 우리를 억누르는 구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히 좋은 계획의 일환이라고 역설한다. 한계 덕분에 우리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되며 이에 따른 형통의 여건이 갖추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작아지기를 연습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기꺼이 작아지셔서 어린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셨고 인간의 한계를 사랑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계는 저주가 아니라 복이라고 강조한다. 바쁘게 쫓기는 삶을 내려놓고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이라는 탁 트인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인간성과 타고난 한계야 말로 우리를 목자되신 예수님께 이끌어 가는 지팡이와 같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지팡이가 될 수 있는 13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디지털 오지랖’을 이야기하는 3장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디지털 오지랖은 인간이 어디에나 다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마트폰으로 잠재울 수 있다는 바램이다. 디지털의 화면을 통해 인간의 시간, 주의력, 사랑, 갈망에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바람을 넣는다.  

디지털의 오지랖에 속으면 자신이 마치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처럼 살 수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디지털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다툼과 권태와 외로움의 정서적 허기와 여파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소비로는 우리가 갈구하는 현재의 삶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어쩌면 디지털 화면이 제공하는 헛된 약속에 노예가 되어서 그 화면 속에서 놀아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순간, 이 한 몸으로, 이 장소에서 사는 법을 반드시 훈련하고 연습해야 한다. 가상 현실을 보려는 욕심을 절제하고 현 순간을 살아야 한다. 매 순간 한 곳에서 한 사람으로 사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기계의 리듬이 아니라 몸의 리듬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화면부터 치워야 한다. 화면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이 엄청난 유혹을 누가 뿌리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살다가 마음이 막막하고 무거워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를 견딜 수 없다고 하는 이들에게도 괜찮다고 어깨를 토닥여 주며 예수님께 이 모습 이대로 우리를 만나 달라고 요청하라고 권면한다. 막막한 심정을 안고 끙끙대는 것이 기계에 정신을 팔거나 자신의 고통을 무기 삼아 가상의 타인을 괴롭히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는 작음을 이야기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낀다. 실제, 몸, 장소, 가정, 나이, 시기, 재정이라는 한계 상황이 왔을 때 그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비결이 된다.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감으로 한계를 끌어안을 때 역설적으로 너른 삶을 살게 됨을 경험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글- 신윤희 목사(하늘향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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