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성령의 역사 Unstoppable work of the Holy Spirit (Acts 11:17)
토론토 큰빛교회 노희송 목사
2020년도를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새로운 일들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우리의 수준이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새 일들이었습니다. 사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불순종 때문은 아닌지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 일들이 우리가 원치 않았던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가족과 가까워지는 회복을, 일상에서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게 경험 하였다거나, 경제적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거나, 성경을 더욱 읽게 되고… 교회에서의 교제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분들 등 새롭게 경험을 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 모든 것들이 말하는 것은 바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 어떠한 상황에도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unstoppable in any circumstance.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의 믿는 성도들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 가운데 핍박받고, 순교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확장해 나갔습니다. 멈추지 않고 목숨을 걸며 나아갔던 그들의 믿음, 용기, 순종을 보게 됩니다. 그 비결은 멈추지 않는 성령님의 역사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야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표어를 내걸지만 정작 초대교회를 닮아가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과연 어떠한 성령의 능력이 멈추지 않고 우리를 이끌어 가실까요?
- 강력하고 지속적인 능력입니다. Persistent power of the Holy Spirit
코로나 사태는 새해가 되어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백신이 공급되기를 기다리지만 정상화가 되기까지는 힘든 상황이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의 부르심과 세상에서의 사명은 계속됩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를 보면 우리보다 더 어렵고 열악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핍박과 순교가 있었고 역사를 보면 전염병도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 같은 자원, 재정, 의학, 기술도 없었습니다. 인터넷 예배나 병원 시설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마냥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강하고 지속적으로 그들을 움직이는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전도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옥에 가두어도 옥문이 이 열려 자유롭게 되고, 핍박 가운데 스데반 집사가 돌을 맞고 순교했는데도 더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복음을 증거합니다.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을 하게 됩니다.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 율법 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사도행전5:39)
지금도 동일한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힘을 주시며 움직여 나가십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사도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례를 베푼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환상을 보여 주시며 성령님을 통해 강권적으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사도행전11:8-10절)
이것은 사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 가운데에도 성령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때로는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반복해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회개하고 회복될 때까지, 순종할 때까지, 매 순간마다 용서하도록, 예수님을 다시 만나도록, 그 분께 인생을 맡기도록, 여러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도록 반복해서 강권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혹시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찔림을 주시거나, 뜨거운 열정, 거역할 수 없는 마음을 주고 계시지는 않은가요?
- 창조적 능력입니다. Creative power of the Holy Spirit
베드로와 고넬료가 떨어져 있음에도 그들의 기도, 마음이 연결됩니다.
초대교회에도 큰 생각의 변화(Paradigm Shift)가 일어납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유연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푼 후의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내려가면, 그 다음에는 바울이 바통을 이어받아 이방의 사도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줍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공회를 열어 이방인들을 위한 새로운 신앙 지침을 세웁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교회 리더십 구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어려운 과부들을 잘 섬기기 위해 안수집사들을 세우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같은 경우에는 사도가 주도해서 세운 교회가 아니었지만 믿는 자들이 세운 교회로 인정하고 바나바와 바울을 목회자로 파송했습니다.
이렇듯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반응, 다른 시도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전의 방식에 묶이지 않는 성령님의 창조적인 역사를 이끌어가십니다.
지금도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미 초대교회에서는 Wi-Fi나 Data 없이도 우리를 연결하고 감동 주시며 움직이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사도행전 10:5)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으니라 하시니” (사도행전10:19-20)
핍박과 환난을 뚫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복음의 열정과 사명의 부르심으로 더욱 뜨겁게 하나로 만드시는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동일한 성령님께서 지금 팬데믹 상황 가운데에서도 목회의 다른 접근과 시도를 창의적으로 감당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영혼을 찾아가는 목회, 밖으로 나가는 목회로 이끌어 주십니다.
80세가 넘은 모세를 통해서 새 역사를 창조하셨던 하나님께서 시니어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매일 똑같은 습관과 자세로 사람을 대하고 똑같은 갈등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배우자와 자녀들과 새로운 관계의 다이나믹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 보시고 의도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안 되면 되게 하는 창조적, 창의적 역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할 수 있다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대도 안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부류에 속하십니까?
- 연합의 능력입니다. Unifying power of the Holy Spirit
확신을 주며 창조적인 것들을 시도하게 하지만 동시에 연합을 이루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입니다. 분열이나 혼란을 일으키시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라는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리더십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의 정서, 문화, 신앙의 틀과는 다르지만 자세히 듣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사도행전11:18)
성령님께서 하신 일을 듣는 자세, 잠잠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며 연합을 지켜나갔던 초대교회의 힘이었습니다. 역동적이었지만 각자 마음대로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방해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하나됨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개인적인 욕심을 품었던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할례파들은 이방인들도 똑같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선교 사역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문화, 정서, 세대를 뛰어넘어 연합하게 하십니다. 다르지만 연합을 이루십니다. 연합(Unity)과 획일화(Uniformity)는 다릅니다. 성령님은 연합(Unity)을 이루시고, 획일화(Uniformity)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혹시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는 모습은 없나요?
부모가 자녀들의 부르심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가로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교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교회의 리더십이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옛 경험이나 지식 등이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본질이 아닌 것은 연합을 위해서, 또한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양보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순종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동참하며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반대하면 결국 우리가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초청을 놓쳐 버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는 멈추지 않고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공동체, 가정을 통하여 역사하시며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나가는 말: 멈추지 않는 성령의 역사에 사로잡혀 쓰임 받기를 갈망하십시오! God is inviting His people to join in and be used by His unstoppable work through the Spi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