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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물이 얼굴을 붉힌 이유(요한복음 2장 1-11절)

물이 얼굴을 붉힌 이유(요한복음 2장 1-11절)

밴쿠버예닮교회 이경태 목사

저는 결혼식을 교회에서 했어요. 하객들을 300명 정도로 예상하고 음식을 준비했는데 500명이 왔어요. 하객들도 많이 왔지만 결혼식 하는 날이 토요일이라 교회에 기관별로 사람들이 주일 준비를 하러 와서는 “얼씨구나!” 하고 점심을 먹은 거죠. 출장 뷔페 측에서 혹시나 해서 350명분으로 준비했다는데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두 번씩 가져다 먹는 바람에 금방 동이 났어요. 먹을 수 있는 욕은 아주 바가지로 먹었죠. 이와 같은 난감한 상황이 본문 가나 혼인잔치에서도 벌어졌어요. 한 참 잔치 중에 그만 포도주가 떨어진 거예요. 당시 결혼식은 보통 RSVP로 신랑이 미리 명단을 받고 철저하게 음식과 포도주를 준비해야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포도주가 떨어졌을까요? 술고래가 참석해서 많이 마셨을 수도 있고, 계산보다 사람이 많이 왔을지도 모르죠. 

보통 술에 취하면 목소리를 높이고 노래를 부르는데 사자 성어로 “고성방가”라고 해요. 한 초등학생 교실에서 “흥에 겨워 크게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른다.”는 뜻의 “가”로 끝나는 “사자성어”는 무엇이냐고 시험문제를 냈더니, 한 초등학생이 답을 이렇게 썼어요. “울 아빤가?” 

본문에서큰 은혜를 받은 어떤 분들은 연말 연시가 되면 술집에 모여 “자, 마셔 마셔! 우리 주님 목수 폐업하시고 처음 도전하신 양조사업인데 우리가 팔아 드려야지.”라며 모임을 하기도 해요. ‘술이 죄다 아니다’를 떠나 절제하지 못하면 망신을 당하니까 꼭 필요한 자리에, 꼭 필요한 시간에만 드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잔치의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면서 “야! 참 이 포도주 맛있다. 참, 이 술 맛있네.” 그래서 ‘참이슬’일까요? 잔치에서 꼭 필요한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단순한 준비 미흡이 아니라 수치와 능력부족으로 평가되어 심각할 경우에는 신부의 아버지가 결혼식을 파토 낼 수도 있었다고 해요. 다행이 이 결혼식에서 신랑이 제일 잘한 일은 예수님을 초대해서 함께 있었다는 것이죠. 

신학자들은 본문에다 “본질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이라고 제목을 붙여요. 물, H2O가 포도주 C2H5OH가 되었으니 아마 공기 중의 탄소를 물에다 집어넣고 발효까지 시켰을 텐데…,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하신걸까요? 이 표적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희석론, 즉 포도주를 적당히 희석해서 가져다 줬다거나, 착각론, 즉 사람들이 부어라 마셔라 할 정도로 취했으니 그냥 맹물을 가져다 줘도 포도주인줄 알고 마셨다고 주장해요. 영국의 한 대학에서 믿기 힘든 이 사건에 대해 기술하라는 논술 시험이 있었는데, 낭만파 시인 조지 바이런은 한 줄로 이렇게 표현했어요.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이 초대받았다는 사실에서 이 결혼식이 예수님 친척의 결혼식이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어요. 마리아의 여동생 살로메의 아들이 요한복음의 저자인데 자신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에세부 내용까지 상세히 알고 기록했다는 것이죠. 물론 당시 점점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예수님과 제자들을 초대손님, BTS처럼 모셨다는 견해도 있고, 마리아가 남편 요셉을 잃은 후에 마땅한 수입원이 없어 결혼식과 같은 잔치를 돕는 알바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설도 있어요. 또한 나다나엘과 예수님께서 대화를 하신 후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다나엘 고향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는 주장도 있죠. 어떻게 예수님과 제자들을 포함하여 마리아가 그 결혼식에 초대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궁금한 것은 마리아가 잔치가 파토나기 전에 떠벌리지 않고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예수님께 조용히 알렸다는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혹시 예수님과 동행한 제자들이 눈치 없게 너무 많이 마셔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일까요? 문제를 발견하면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크게 떠벌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마리아는 달랐죠.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어머니의 말에 대해 답변하는 태도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지죠.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했어요. 얼핏 들으면 “나 보고 어쩌라고?” 하는 듯 건방진 말 같아 보여요.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한 것은 극존칭으로 보시는 것이 좋아요. 물론 예수님은 여성을 비하하신 적이 없으시고 모든 여성에게 존칭을 사용했어요.특별하게 극존칭을 사용하셨는지는 천국 가서 여쭤보는 것 외에는 알 길이 없으나 본문에서도 반말이 아닌 극존칭을 사용해서 이제 더 이상 혈연적인 관계가 아님을 구별하시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여지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며 얼핏 보면 ‘거절인 듯 거절 아닌 거절 같은 거절’을 하세요. 당황스러운 것은 마리아도 그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하시던지 그대로 하라’고 하인들에게 명하죠. 두 분 사이에 마치 동문서답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일상 대화가 이러셨다면 모자 사이에 참 대화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신의 때”는 무슨 의미일까요? 많은 신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하지만 저는 그 중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신랑 되셔서 포도주를 준비해야만 그 때, 즉 천국 혼인 잔치를 위해 재림하시는 그 때를 의미한다고 봐요. 천국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포도주를 준비하실 신랑이 되세요. 신랑 되실 주님은 신부 되는 교회, 자신의 순결한 성도들을 데리러 반드시 자신을 두 번째 세상에 드러내실 거예요. 그 때에 이곳에 앉아 있는 모두 환하게 웃으며 기쁨 가운데 마주할 수 있으시기를 기도해요. 

포도주는 언제 바뀌었을까요? 물을 가득 채울 때? 떠다가 연회장에게 주려고 이동 중일 때?아니면 연회장이 맛보기 직전에? 어떤 경우에든 하인들이 깨끗하지도 않은 물을 떠다 주면서 화를 당할까 봐 두려웠겠죠. 막무가내로 손발을 씻는 돌항아리에 무작정 물을 채운 후 떠서 가져다주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시키는 분들을 전문용어로 ‘무대뽀’라고 해요. ‘대뽀’는 조선 시대 전쟁 때 사용하던 ‘소총’이에요. 그러니까 ‘무대뽀’는 전쟁에 나가는 군인에게 총도 지급하지 않고 맨 몸으로 나가라는 상황이죠. 오늘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시킨 명령이 바로 이 무대뽀 중에 무대뽀상황이에요.(King of Kings)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싶은 영적인 교훈이나 의미는 무엇일까요?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식장처럼 우리의 소중한 인생에도 주님이 빠지고, 사명이 빠지면 의미 없는 인생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단순히 귀한 손님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서 고단한 인생과 모자란 삶을 기적으로 채우며 변화되어 살라는 의미일까요? 돌항아리 입구까지 가득 채우고 떠다가 준 무대뽀적 절대 순종을 하면 물이 최상급의 포도주가 되듯이 참된 믿음과 무대뽀적 순종으로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일까요? 분명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무슨 말씀을 하시던 토 달지 않고 순종하면 물과 같은 우리의 삶도 반드시 맛깔스런 포도주가 되요. 우리들 중 대부분은 그렇게 주님을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도 순종한 결과 삶이 변화되었죠.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을 판단하고 불순종이 섞이다 보니 우리 삶에 기적이라는 것이 사라진지 오래죠. 그러나 그런 영적인 의미만 있는 걸까요?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는 이 표적(기적이 아니라)이 기록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어요. “제자들이 믿으니라.” 

 요한복음의 7가지 표적은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추억의 기록이에요. 이 표적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을 기술한 거예요.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주머니에 있는 사탕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해 주는 도구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기적 자체에 흥분해요. 그런데 대상을 잃어버린 예배와 감사로 결국 자기 연민에 빠져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예수님과의 관계도 발전이 없죠. 이 표적이 하인들과 연회장에게는 신기한 마술쇼에 불과했어요. 예수님과의 관계에 변화가 없어요. 그러나 제자들은 “믿었어요.” 믿어 드렸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믿음이 깊어지고 신뢰로 묶였다는 말이에요. 최고의 포도주를 얻어 마실 수 있다고 해도, 기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다고 해도 모두가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죠. 최상의 포도주만 찾아다니며 맛보는 사람들처럼 기적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주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나 제자들만큼은 기적에만 이끌려 다니는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과의 관계의 깊이가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사람으로 성숙해가요.

  우리 교회가 선교적 가정교회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오늘날 기독교인의 최대의 적은 ‘소비주의’라는 말이 있죠. 소비주의는 제자화와 정 반대의 노선을 걸어요. 팬더믹이 되자 세계 교회는 경쟁적으로 기독교 컨텐츠를 만들어 “예배 소비자”를 양성하는 것에 주력하지만, 선교적 가정교회는 제자를 만드는 것에 목숨을 걸어요. 은혜는 받았다는데 열매는 없는 삶의 반복이 아니라, 작은 섬김과 헌신을 통해 참 제자가 되죠.소비주의에 물든 기독교인은 자신이 성경적 용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제자라고 착각해요. 현대 광고는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기에 기독교적인 용어까지 과감하게 도입해요. 예로 ‘공허’라는 말은 반드시 주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영역인데 상업에서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판매하는 상품이 공허를 채워 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죠. 거듭남이라는 것도 완전한 변화를 의미하는 중생을 통한 구원의 의미지만, 단순한 기술의 발전 등을 나타낼 때도 함부로 이 단어를 도용하죠. 좋은 물건을 얻었을 때 ‘득템’했다고 하는데 이는 토템 신앙적 용어에요. 소비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세상의 것에 영적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마치 영적으로 살고 있는 줄 착각해요. 제 은사 닐콜은 말하기를 “제자가 나오지 않는데 리더가 나올 리 없다. 리더가 없는데 교회가 부흥할 턱이 없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데 운동이 잘 될리 없다.”라고 말해요.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관심이 있는 복음서에요. 

물이 포도주가 되듯 곤란한 일이 해결되었다는 자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자랑할만한 일을 통해 예수님과 과연 얼마나 더 친밀해 졌느냐 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일곱 가지 표적은 무엇인가요? 그 표적을 통해 얼마나 예수님과 친밀해 지셨는지요? 신앙이 성장했던 표적, 예수님과의 관계가 풍성해지는 표적,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강해지고 주님과 끈끈하게 묶이는 표적으로 제자로서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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