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 교회, 다시 생각해 보기(고전 12:26-27)_조이풀교회 김영남 목사

[설교단상] 교회, 다시 생각해 보기(고전 12:26-27)_조이풀교회 김영남 목사

교회, 다시 생각해 보기(고전 12:26-27)

조이풀교회 김영남 목사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창립10주년을 맞아 다시 교회를 생각해 본다. ( 8주 시리즈 중 두번째 설교) 우리가 이해하는 좋은 교회, 이상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많은 경우 내가 좋아하거나 좋은 추억이 있거나, 또는 왕성한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를 생각하게 된다. 즉 내가 기준이 되어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좋은 교회를 논할 때 중요한 기준은 성경적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는가?, 교회의 중요성이 모두에게 인정되는가?,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가?, 선교와 구제에 적극적인가?, 교육에 대한 관심과 헌신이 이루어지는가?, 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가진 아름다운 교회인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순히 좋은 교회를 찾지 말고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참되고 순전한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족공동체, 즉 하나님이 불러내어 모인 성도들로서 지상과 천상, 과거와 현재 뿐아니라 미래까지 포함하는 공동체이다. 너무 좁게 지금의 지역 교회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교회는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교회는 신부요 그리스도는 신랑’, 또한 ‘교회는 가지요 그리스도는 참 포도나무’ 그리고 ‘교회는 성전이요 그리스도는 머릿돌’이라는 상징적인 비유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위대하다.  

교회는 우주적인 ‘하나’의 교회로 동일하지만, 각각의 지역교회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을 가진다. 우리교회는 한인교회, 이민교회. 캐나다(미국과 확실히 다른), 밴쿠버(서부 관문도시), 코퀴틀람(유동성이 많고 젊은 연령, 어린자녀와 교육관심)의 특징을 가진다. 또한 우리교회는 하나의 교회로서 성도들의 구성 (연령, 신앙경력, 심지어 이민경험), 교회의 역사, 목회자, 구성원, 교단, 교회의 환경과 시설에서 다양한 기회나 제한을 갖는다.

바라기는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경과 시대와 교회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온전히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우리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되신다. 교회는 주님께 속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머리라 함은 다스리는 권위와 권세가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이다.  머리와 몸은 연결된 유기적 관계이며, 하나이고, 순종적 관계이다.  (골1: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이시다 (빌2:6) 우리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하나님이 가장 높고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교회는 예수 중심이어야 한다. 예수없는 교회는 이름은 있다해도 실제적으로 교회가 아니다. 사람이 중심되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가 한분이면, 몸인 교회도 하나이다. 나뉠 수 없는 교회이다. 교단, 지역을 초월하여 하나이다. 교회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중심이다.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중심 성령중심의 신앙처럼 교회도 그러하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존귀한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에베소서 5장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바로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이 뗄 수 없는 밀접하며 깊은 사랑의 관계이다. (엡5: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몸이라는 영광을 허락하셨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충만케 하신다.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둘째, 우리는 몸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인 교회를 믿는다. 예수를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와 각각의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즉 우주적인 교회, 비가시적인 교회라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도 분리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지체와 교회 공동체와도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작게는 지역교회이지만 넘어서서는 모든 성도가 한 교회로 존재한다. 이것을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우리의 신상생활, 교회생활은 엄청난 변화와 축복을 경험할 것이다.(고전12: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엡2:20-21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벽돌 무더기 처럼 한장 한장의 벽돌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의 한 부분이다. 다시 말해 따로 뗄수 없다.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래서 26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실상은 많이 다르다. 교회는 세상처럼 비교하고 경쟁한다. 때로는 마켓팅처럼, 때로는 다른 교회를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같지 않고, 차이가 많다고 느끼게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 각각의 교회는 손가락과 같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손바닥과 같다. 그렇다면 손가락이 손바닥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나와 너를 넘어서 우리이다. ‘우리교회’이다. (고전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각자가 속한 지역 교회뿐 아니라 다른 교회와의 관계를 통해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교회는 우리 자신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가 수치당하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부끄러워하고 아파해야 한다. 남의 일로만 여기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면 안된다.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일에 열망을 가져야하고, 성도는 개인적 신앙뿐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가운데 거룩하고 정직하며, 희생과 섬김의 삶으로 살아가야한다.  우리의 교회됨이 교회안에서, 가정과 세상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직분으로 호칭하면서 타인에게 인색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밥먹을 때 기도하고 다른 사람 험담하고, 거래나 관계에서 너그럽고 넉넉한지 못하고 오히려 더 인색하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별히 성도, 지체들에게 (갈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비교와 경쟁으로 결국 서로를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된다. 

세째, 우리는 몸으로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그 안에서 자라고, 온전히 세워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께 충성하고 하나님만 높여야 한다. (고전3:6-7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교회의 신비 중에 하나는 다르지만 하나라는 것이다. 다양성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상호 보완하고, 충족시키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롬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몸을 온전케할 사명이 있다.  받은 직분과 은사를 따라서 섬겨야 한다. (엡4: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 안에서 섬김으로서 ‘함께 사역하는 삶’ 을 통해 내 믿음이 드러나고 열매를 맺게 된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성령안에서 은사도 받는다. 다 같지는 않아도 없지 않다. 주님을 위한 사명과 재능, 거룩한 부담감, 때론 필요를 따라 주님을 섬기라. 내게 주신 것으로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며 섬기는 것이 핵심이다.  자기 유익을 구하면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나 인정이 아니다. 성도를 구비하고,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자라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공동체에 내 몫의 책임이 있다. 무슨 일이든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헌신과 수고가 있는데 이때에 각자가 할 일이 있다. 예배, 봉사, 헌신, 헌금 등 짐을 나누는 공동체가 건강하다. 내가 누리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사명을 위해 우리는 부름 받은 사람이다. 그러기에 작은 것이라도 참여하고 함께하고 나누기 바란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는게 행.임을 깨닫는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성숙한 사람이 더 많은 짐을 진다. 어린 아이보다 어른이 더 감당하는 것과 같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짐을 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짐을 진다. 목회자와  직분자들은 는 성숙함으로 자기보다 전체를 생각하고, 헌신과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오랜동안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지 말고, 분투하고 전진하라. 성숙한 성도가 교회의 기둥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바울의 고백에서 배우라. 아비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또 해산의 수고가 요구되기도 한다 (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생명을 얻기 위한 모든 과정은 어렵지만 숭고하다.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은 존귀한 일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가치 있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몯된 교회는 건강해야 한다. 어려운 시대에 교회도 성도도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아무도 아프게 하지 말라. 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인가? ‘공동체의 유익’을 가져오는 것인가? 이것에서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해선 안된다. 그런 생각조차도 버려야 한다. 심지어 봉사나 사역도 주의해야 한다. 안그러면 독이되고, 병이되고, 상하고 깨어진다. 주님이 사랑하신 ‘그’ 교회가 고통받는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지 않도록 주의하라.

결론: 계2-3장의 7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는 공통분모가 있다. 교회에 주시는 성령의 음성,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약속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를 보고 주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교회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다 – 머리를 의식하라. 몸은 연합해야 한다 – 하나님과 경건한 관계, 믿음의 지체들은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며 회개하고 돌이키고, 용서하고 용납하라. 몸은 사랑할 때 건강하게 자란다 – 하나님의 영광,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라. 모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를 기도한다. 아울러 우리 각자의 교회가 온전케 되도록 기꺼이 헌신하기를 부탁한다. 

Advertismentspot_img
- Advertisment -

최신 칼럼

인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