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가본것 같은 성지순례[칼럼:가본것같은 성지순례 눈물교회 (The Sanctuary of the Dominus Flevit)

[칼럼:가본것같은 성지순례 눈물교회 (The Sanctuary of the Dominus Flevit)

눈물교회 (The Sanctuary of the Dominus Flevit)

감람산 전망대를 지나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가는 급경사길 중턱에 눈물이 떨어져 있는 모습으로 건축이 된 교회가 있다.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우측에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데, 탕자와 연관된 쥐엄열매가 달리는 쥐엄나무다 (눅 15:16).  그 나무를 지나  좌측편으로 구약성경시대부터 사용되어 오던 가족 묘지가 있다.  구약성경 시대에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경우, 그의 시신은 가족묘로 향하게 된다.  세마포를 입힌 시신을 동굴 바닥에 반듯하게 뉘여 놓고, 문을 돌로 막아놓은 다음 1년 후에 가보면 가지런히 뼈만 남는다.  그 뼈를 잘 추려서 동굴 안쪽에 조상의 뼈를 모아둔 곳에 던져 뼈가 섞이게 되는 것을 조상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욥 27:19). 이러한 장례의식이 기원전 3세기 이후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으로 변화를 맞게 된다.  세마포로 싸여진 시신을 동굴안쪽 바닥에 놓고 무덤의 문을 닫은 후 1년 후에 돌아오면 뼈만 남는데, 그 개인의 뼈를 오수아리(Ossuaries)라고 불리는 작은 유골상자 안에 담게 되는 것이다.  

1세기 초기로마시대로 접어들어 얇은 유리로 작은 호리병 모양의 눈물병을 만드는 방법이 발달하면서 개인마다 눈물병을 갖게 된다.  그 눈물병은 기쁨, 즐거움, 후회와 같은 인간의 희로애락 가운데 흘리는 눈물을 모아두는 병이다. 특히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고 가족의 남은 구성원이나 전문적으로 우는 여인들이 한구석에서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슬프게 울게 된다. 그 때 떨어지는 눈물을 눈물병에 담아 시신 옆에 두고 무덤의 문을 닫는 것이다. 이런 눈물병은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신약시대의 고대 무덤에서 발견이 된다.   이런 배경에서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아 바루치는 비잔틴 교회의 흔적위에1955년 눈물이 떨어진 모습의 교회를 건축하게 되는데 그 교회 지붕의  4개 모서리의  항아리처럼 생긴 것이 눈물병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향하실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외쳤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눅 19:38).

이런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님께서는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 것이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고 이 땅을 떠난 후 벌어질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견하시고 통곡을 하신 것이다 (눅 19:41).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3-44).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4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서기 70년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의 지휘아래 4개의 군단이 전쟁에 뛰어들었고, 그들은 먼저 예루살렘 성의 사람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토성을 쌓아 공성전을 벌이게 되었다. 예루살렘 성은 함락이 되었고, 유대인들의 자부심이자 심장인 성전은 불태워졌다. 건물을 받치는 금으로 장식된 기둥의 주랑과 성전 안에 있던 반세겔 은화, 봉헌된 각종 금은 보화들은 녹아서 성전의 바닥 돌들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로마의 병사들은 성전의 완전한 파괴와 더불어 성전산의 바닥 돌들 틈 사이로 녹아 들어간 금을 캐내기 위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게 다 파헤치고 파괴했던 것이다.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예루살렘 성의 함락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백만명 이상이 살육을 당했다고 한다. 일부는 창과 칼에 찔려 죽고, 불태워져 죽고, 굶어서 죽고, 몸무게가 성인보다 덜 나가는 아이들은 로마병사들이 두 다리를 잡고 빨래를 털듯 땅에 메어쳐 죽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미래에 올 이 상황을 예견하시고 살 길을 알려주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막 13:14) 

제 1차 유대인 전쟁이 발발한 서기 66년 이 시기에 이 말씀을 기억했던 예수 공동체는 요단강 건너 펠라(Pella)라는 로마의 도시 데가볼리 중의 한 곳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자신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제사장 계급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성의 멸망을 예견하신 예수님은 그곳을 바라보시며 슬프게 통곡하셨던 것이다. 

글, 사진_ 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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