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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보것같은 성지순례] 엘라 골짜기(The Valley of Elah)

엘라 골짜기(The Valley of Elah)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을 대하여 항오를 벌였으니 (삼상 17:2)

엘라 골짜기는 사무엘상 17장 말씀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유대 산지 서쪽 낮은 평야 지대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히브리어로 엘라(אֵלָה)라는 뜻은 상수리나무란 뜻이며,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던 엘라 골짜기, 즉 상수리 나무의 골짜기에서 3천년 전 이스라엘의 운명을 건 전투가 벌어졌다. 이곳은 지중해변의 해안으로 나아가는 관문에 해당하는데, 엘라 골짜기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과 유다 산지의 중요한 도시인 헤브론과 예루살렘을 만날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골리앗의 고향 가드를 포함한 블레셋의 다섯개의 도시인 에그론, 아스글론, 아스돗, 가사 그리고 가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해안평야 쪽에서 베들레헴이 속한 유대 산지쪽으로 올라가는 길인 엘라골짜기를 중앙으로 그 주위에 세 개의 고대 도시, 아세가, 사아라임 (삼상 17:52) 그리고 소고가 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삼상 17:1)

기원전 10세기 어느날 블레셋 사람들은 그 군대를 모으고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 그들은 유다의 성읍이었던 소고를 취하고 엘라 골짜기 북쪽 언덕 ‘피의 끝자락’이란 뜻의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 사울을 대장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진영은 소고 근방 엘라 골짜기 동쪽에 진을 쳤을 것인데, 그들을 향해서 싸움을 거는 자가 나왔고, 그는 가드 출신 골리앗이었다.  가드라는 곳은 엘라 골짜기에 속한 아세가 성읍쪽에서 서쪽으로 28km 가량 떨어져 있는데, 차로 353번 도로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한다. 골리앗의 출신지 블레셋의 도시 가드는 현지에서는 ‘하얀 언덕’이란 뜻의 텔짜핏(תל צפית )이라 불리는 곳으로, 흰색으로 밝게 빛나는 석회석으로 덮여 있는 도시이다. 골리앗의 출신지 가드를 방문하면 그 규모가 커서 너무 놀라게 된다. 블레셋 사람들이 거주했던 가드는 남왕국 유다의 예루살렘 다음으로 큰 도시였던 라기스성 만큼 큰 위용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기원전 10세기 블레셋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블레셋 군은 소고와 에페스담님을 점령한 후 엘라골짜기를 통과해 베들레헴쪽으로 치고 올라가면 24시간 안에 베들레헴에 당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엘라 골짜기에서 가드 출신 골리앗이 40일 동안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아침 저녁으로 모욕하며 싸움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삼상 17:10)

베들레헴에서 아버지 이새의 분부대로 형들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엘라골짜기로 온 다윗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의 말을 듣고 그와 맞대결을 하러 이스라엘의 대표로 출전을 하게 된다. 엘라 골짜기에서 항오를 벌이며 각 진영에서 가장 용감하며 칼을 잘쓰는 자가 나가서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은 기원전 8세기에 쓰여진 그리스의 서사시,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트로이 전쟁의 모습과 닮은 꼴이다. 트로이의 헥터(Hector)와 그리스의 파트로클러스(Patroclus)가 양군을 대표해서 일대일로 싸웠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양치기 다윗과 블레셋의 명장 골리앗이 엘라 골짜기에서 일대일로 대결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로 다윗과 같은 양치기란 직업은 그 중요성이 점점 떨어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광야생활과는 다르게 새로운 땅에서는 점차 농업에 종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가정에서 경제적 부분을 책임지던 목자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면서 주로 가정의 가장 어리고 연약한 자가 양치기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광야에서는 베두인들이 양과 염소를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성인 남성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여자, 그리고 키가 작은 소년도 작대기 하나 들고 양떼들을 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울이 이렇게 말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말째라 베들레헴에서 그 아비의 양을 칠 때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삼상 17:14,33)

다윗은 목자들이 가지고 다니던 손가방에서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다. 물매는 새총처럼 아이들 장난감이 아닌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 무기였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총과 같은 것이었다. 전쟁 때의 물맷돌은 보통 어른 주먹만해서 그것을 정통으로 이마에 맞는다면 어느 누구도 중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실제 1987년도에 제 1차 인티파타가 일어났는데, 이스라엘의 경찰들은 곤봉과 총을 차고 소요진압에 투여되었지만, 팔레스타인들은 돌과 물맷돌(Sling Stone)로 대항했었다. 지금도 감람산 동쪽 유대광야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베다니 나사로의 무덤 주위에는 아랍 사람들이 낙타털로 짠 물맷돌을 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맷돌에 담긴 돌은 2백에서 멀리는 3백미터도 날아간다.  그 물매를 하나 사서 엘라 골짜기에 있는 나무를 향해 다윗처럼 물매를 돌려 맞춰본 적이 있다. 겨우 10미터 앞에 놓인 나무를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던 이유는 그가 평소에 양치기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자나 곰도 물리치고 그것들을 쳐 죽였던 용맹함과 스킬에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는 그의 신앙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은 거인 골리앗과 블레셋을 물리쳤으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글, 사진_ 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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