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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기숙학교와 관련하여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쉽다

원주민 기숙학교와 관련하여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쉽다

세계 인권선원은 “모든 사람은 생각, 양심,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이 권리는 자신의 종교나 신앙을 바꿀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 이 권리는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변경할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가르치고, 실천하고, 예배하고 준수하는 데 있어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할 자유를 포함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인간으로서 이 권리를 가질뿐만 아니라 이웃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는다. 너무 많은 전쟁이 종교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왜 이 개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까?

주로 유럽과 북미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종교의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을 포함하여 종교를 따르려는 이웃의 선택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이 질문에 반응한다. 그들은 신앙과 종교가 전 세계 사람들, 심지어 바로 옆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 위안을 준다는 것을 잊는다.

완전한 종교는 없다. 어떤 예언자의 가르침도 왜곡될 수 있고, 폭력적인 괴물은 경건함의 베일 뒤에 쉽게 숨을 수 있다. 다른 인간 기관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지속적인 변화의 상태에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교 지도자도 실수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이 점점 관대해지고 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경멸적으로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종교나 종교 단체 회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모든 가톨릭 성직자들을 소아성애자로 분류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분류하는 것도 좋지 않다. 모든 무슬림 남성들을 테러리스트와 여성혐오자로 분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모든 사람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믿으면서,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식별되는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인륜에 반하는 범죄를 조사할 때, 홀로코스트는 가스실이 아니라 인간의 말로 시작됐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 후 인종차별법이 등장했고 예배의 장소들이 불태워졌다.

최근 캐나다 교회에 대한 방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 기숙학교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일이 있었을 때에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매우 오랫동안 기숙학교 학생들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고 캐나다 정부가 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일 년의 대부분을 땅이 얼어붙은 나라에 산다. 이 학교 근처에 표식 없는 얕은 무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거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학교를 운영했던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캐나다인들이 이 아이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어쩌면 기독교가 쉬운 대상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되기 때문에 희생양으로 기독교를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통틀어 교회가 불타도록 용인한 사회를 나열한다면, 우리는 캐나다가 그 집단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분명하다. 모든 캐나다인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94개 행동 강령을 숙지하고 일상 생활에서 실행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캐나다에 와서 기숙학교를 운영하는 데 로마 가톨릭의 역할에 대해 사과하고, 가톨릭 교회는 의미 있는 화해 행위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캐나다에서 운영하던 모든 기관이나 캐나다인들도 마찬가지다.

트로이 미디어 칼럼니스트 게리 치디악은 언어, 대량학살 연구, 위험에 처한 학생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고등학교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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