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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에그(Easter Egg)와 부활

이스터 에그(Easter Egg)와 부활

사순절(40일의 기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 필자 주)과 함께 고난주간을 지나고 있다. 오래전에 “패션 오브 더 크라 이스트(Passion of the Christ)”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 무척 감동을 하였던 기억이 있다. 코비드 19 이후로 3년 차가 되어가는 이때 아직도 펜데믹은 진행 중이다. 영화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받고 고문당하는 현장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몰상식하게 사순절을 단지 가톨릭의 전유물이라고 비난하지도 말자. 사순절 기간 나는 얼마나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요 부활절을 맞이하는 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쾌락을 본받지 않고 즐기지도 않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포인트는 주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묵상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이 바로 십자가 신앙이요 부활 신앙이기 때문이다. 창조와 부활 즉 기독교의 두 가지 핵심 기둥을 믿지 않는다면 불신자와 다름없다.

 예수님의 죽음은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나?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했을까? 종려주일에 그렇게 예수님을 환영했던 무리가 왜 갑자기 돌변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나라면 어찌했을까? 함께 예수님을 조롱하고 돌을 던졌을까? 아니면 베드로처럼 조용히 사태를 방관하거나 지켜봤을까?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기에 그 고통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일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라는 화두로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자리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했을까? 오죽하면 세족식을 거행하셨을까? 

최후의 만찬을 갖기 전에 행하였던 세족식은 예수님의 솔선수범하는 신앙의 가르침이었다. 세상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밥그릇 싸움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예수님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도 진짜 리더는 팀원들에게 명령만 내리지 않는다. “돌격 앞으로” 대신에 “나를 따르라”고 한다. 솔선수범이다. 당시 “발 씻기”는 것은 종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나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고 하니, 베드로가 만류하는 것도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른바 “내로남불”하는 세상이다. 나만 알고 남은 어찌 되든 신경도 쓰지 않는 무관심한 세상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손 해도 성도의 삶은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어찌하랴! 성경에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온다. 세리는 자신의 죄를 알고 감히 성전 안에 들어가기도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이 죄인을 용서하옵소서”라고 고백했던 세리와 달리 바리새인의 기도는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내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로 시작한 기도는 자화자찬으로 이어진다. 금식하고 십일조 하는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높이고 미화한다. 

진짜 성도는 겸손할 줄 안다. 함부로 나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비하하지 않는다. 원망과 불평 대신에 감사와 배려로 나아간다. 위선적인 바리새인의 기도와 달리 세리의 기도는 솔직담백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다. 비교는 독이다. 제발 비교하지 말자. 비교할수록 남의 떡이 커 보이게 마련이다. 자족하자. 탈무드에서도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현재 자기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부활절이 코 앞이다. “고난이 유익”이라고 했다. 고난이 없이는 부활도 없다. 즉 십자가(고통) 없이는 면류관(영광)을 얻지 못한다. 펜데믹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포기하거나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진짜 성도는 이때 빛을 발한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원망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어찌해야 할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자. 그 안에서 은혜가 흘러나온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면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문제들이 해결된다. 내 생각이 바뀐다. 회복과 치유가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이다. 

예전에는 부활절이 다가오면 삶은 계란을 준비했다. 정성껏 색도 칠하고 포장도 해서 성도 간 또는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나눔이요 부활의 기쁨이다. 안타깝게도 코비드 19 이후 이러한 아름다운 나눔과 일들이 사라졌다. 다시 회복되길 바란다. 하나 됨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뜻이다. 다투고 갈라지고 미워하고 멀어지는 지는 것은 사탄의 계략일 뿐이다. 특별히 우크라이나 사태가 잘 해결이 되고 대한민국에도 화합과 평강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 이번 부활절을 계기로 다시 캘거리의 모든 성도가 하나 되고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회복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이진종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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