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4 – 기숙학교 2
매년 가을이면 내가 속해 있는 원주민 어르신들 모임에서 2-4일정도 여행을 간다. 올해도 가을 여행을 가기 위해서 회의를 하던 중 3년 전에 갔던 여행지에 대해 한 분이 불편한 내색을 비쳤다. 3년 전에 갔던 장소는 BC주 동남쪽인 크랜브룩이었는데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이 문제였다. 그 호텔은 과거 원주민 기숙학교였는데 리모델링을 해서 호텔로 바꾼 것이다. 그 안에는 작은 서점이 있고 곳곳에 옛 흔적들을 담은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여행 당시에는 원주민 어르신들이 아무런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여행 이후 한동안 불편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여행지 선정을 논의 하는 중에 또 다시 거론이 되었다.
호텔은 기숙학교 교실을 객실로 바꿔놓았고 체육관과 운동장을 식당과 정원으로 만들었다. 그 호텔에 처음 방문한 나로서는 한적한 환경에 건물도 고풍스럽고 독특해서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그곳에서 숙박했던 많은 이들이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렸기에 다시는 그런 장소를 선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호텔 벽에 걸린 당시 기숙학교 아이들의 단체사진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르신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이곳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아이가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아이가 학살과 학대를 당했을까?’라며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그 여행을 계획하고 진행한 사람들도 우리 원주민 어르신들이었고, 그 호텔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원주민들이어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만약에 외부 사람들이 이런 행사를 기획했더라만 큰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년 전에 BC주 아보츠포드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선생님이 5학년을 대상으로 ‘기숙학교에 많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숙학교를 통하여 얻게 된 좋은 점 5가지를 써내시오’라고 숙제를 내줬다. 그 학교에는 물론 원주민 학생들도 있었다. 그 숙제는 원주민 공동체에 큰 공분을 일으켰고 이어 BC주와 캐나다 전체에 큰 뉴스가 되어서 교장과 교육부에서도 사과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을 잘 모르는 한국인 유학생 한 학부모가 나에게 찾아와서 자기 아이의 숙제라면서 ‘기숙학교를 통하여 얻은 장점이 무엇이었는냐’고 질문을 했다. 나는 그 엄마에게 어떤 장점이 있었을 거 같으냐고 반문했다. 그의 답변을 듣고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그렇게라도 영어를 배울 수 있었으니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는 것이었다.
영어를 못해서 한이 된 사람들은 이런 말에 동의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에 일본말을 덤으로 하게 되었다느니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다느니 일본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느니 하는 식민 사관과 다른 게 과연 무엇인지 답답할 노릇이다.
여전히 다수 캐나다 백인들은 기숙학교의 심각성을 보지 못하고 승자 위주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으니, 150년 이상의 아픈 상처를 싸매기는커녕 오히려 잠잠해가던 아픈 마음을 헤집어 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