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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주민이해하기] 원주민 카누 여정 – 원(Circle)

원주민 카누 여정 – 원(Circle)

장장 15일 간의 카누 여정이 시작되었다. 20여개 부족에서 5-600명의 원주민들이 참석했다. 어떤 부족은 티피에 머물기도 했고, 어떤 부족은 똑같이 옷을 맞춰 입기도 했다. 내가 참석한 부족도 같은 옷을 입었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날, 부족 장로 한 분이 우리 부족원 30여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카누 여정의 영적 지도자격인 네케이튼 장로는 우리에게 서로 손을 맞잡을 만큼 가까이 모여 둘러 앉으라고 했다. 이렇게 둘러 앉는 것이 원주민의 전통이라고 했다. 그는 말 그대로 원형으로 둘러 앉는 것(circle)을 강조했는데, 여기에 원주민 문화의 심오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됨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나됨이란 기존 관계 속 사람들과의 하나됨도 있지만 그 원 안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의미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우리를 지켜보는 선조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했다. 원주민 문화에서 원을 만드는 것은 개인과 가족, 공동체, 자연계의 상호 연결성을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카누를 타는 행위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과거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위대한 유산에 참여하는 것이고, 지금 이 세대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갈 길을 제시해주는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마치 계주 경기를 하는 선수가 앞 주자에게서 바톤을 잘 이어받아서 다음 주자에게 잘 전달해야만 경기가 완주되는 것처럼, 우리는 중간에 있는 세대로서 앞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카누를 타는 것이다.

또한 네케이튼 장로는 이렇게 손이 맞닿을 만큼 가깝게 앉아야 외부에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도와 주면서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15일 이상 야외에서 캠핑을 하면서 잠을 자고 먹고 매일 격렬하게 노를 저어야하는 일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작 전부터 장차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 예상은 했다. 사실상 거의 매일 아침마다 비가 내렸지만 우리는 6시에 기상을 해서 각자 텐트를 걷은 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8 시간 동안 노를 저어 이동했다. 때로는 바다처럼 널찍한 호수 한가운데를 지나느라 식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일도 있었고 카누 위에서 갑작스레 복통이 일어난 팀원도 있었으며, 카누가 뒤집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무엇보다 매일 노를 젓다보니 다들 근육통으로 고통스러워했지만, 목표지점까지는 반드시 가야했으므로 중간에 멈추거나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듯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네케이튼 장로는 우리를 원으로 둘러 앉게 한 뒤 각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들어주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힘을 돋우어 주었다. 이 카누 여정의 목적은 단지 남보다 빨리 목표점에 도달하거나 먼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보호하면서 끝까지 노를 저어가는 것임을 계속 상기시켜 주었다.

일부 원주민 문화속에서 원은 치유와 영적 성장과 연관된 영적 의미가 있다. 물론 다양한 상징물이나 도구를 이용하여 의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다함께 둘러 앉아서 서로의 치유와 성장을 위해 힘을 합하는 모임을 뜻한다.

출신이나 배경에 상관 없이 함께 카누에 오른 이상,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에 서로를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하며 이를 통해 서로를 치유하고 영적 성장을 도모한다는 원주민의 연대 문화를 이들의 원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생존 방식으로 사용하는 현대 문화 속에서 이들의 원 문화는 참으로 빛나는 지혜의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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