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이상열 선교사의 원주민 이해하기 카누 - 빨리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

[칼럼:원주민이해하기] 카누 – 빨리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

카누 – 빨리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

여전히 하늘은 캄캄했지만 대부분의 대원들은 동트기 전부터 일어나 각자 짐을 정리했다. 우리는 매일 카누를 타고 이동하지만 평소 캠프를 지키던 그라운드 팀도 오늘은 짐을 싸서 이동한다. 모든 부족 마을 사람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길떠나는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추장의 송별 인사가 끝나자, 우리 대장 브랜든은 오늘 카누 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목적지까지 가려면 오늘이 어제보다 한두 시간 더 걸릴 것이 매우 피곤할 수 있을 것이라 당부했다. 다행히도 우리 부족 카누는 26명 가량이 탈 만큼 큰 카누였기에, 승선 인원수가 많은 만큼 속도도 빠르고 힘도 좋았으며 돌아가면서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드디어 공식적인 환송의 노래가 울려퍼지면서 정박했던 20여대의 카누가 순서대로 출발했다. 우리 카누는 20여 대중 15번째로 출발했다. 이 강을 잘 알고 있던 우리 카누 대장 브랜든은 뒤에 따라오는 카누들을 가이드하는 한편 우리 카누의 움직임을 진두지휘하며 강 하류로 힘차게 내려 갔다. 브랜든은 다가올 위험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카누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물살이 급할 때는 역으로 노를 젓게 하면서 대형 카누를 능수능란하게 지도했다.

강의 중간쯤 도달했을 무렵부터 카누들이 하나둘씩 간격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강의 흐름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를 젓던 구원성들이 서서히 지쳐 가는 시점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인원이 많았기에 돌아가면서 조금씩이라도 쉴 수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목적지로 가던 강이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에 다다랐다. 그 지점은 물이 나뉘면서 부딪히는지 물살이 매우 급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강은 왼쪽인데, 자칫 오른쪽으로 빠지게 되면 작은 카누의 경우 되돌아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브랜든은 물살이 급하게 요동치는 갈림길 왼쪽 강 초입에 배를 멈추게 했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흔들리는 강 위에 멈춰 있으려면 모든 대원이 역동적으로 카누를 저으며 버텨야 했다. 대장이 배를 세우라 했으니 급한 물살에
떠내려 가지 않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저어야 했다. 일부 젊은 친구들은 목적지 까지 빨리 가지 않고 왜 이러고 서 있느냐며 웅성거렸다.

그때 브랜든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왼쪽 강을 타고 가버리면 우리를 뒤따라 오다가 처져버린 카누들은 오른쪽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오른쪽 강이 훨씬 넓고 쉽게 진입할 수 있어 보이니 그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지 않으면 뒤에 있는 카누들은 심각한 어려움을 당할 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기다림이었다. 한참 동안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역 방향으로 노를 저으며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동안 뒤를 따르던 카누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아니나다를까 자연스레 오른쪽으로 뱃머리를 향하는 배들에게 브랜든은 일일이 왼쪽으로 움직이라고 안내했다. 마지막 카누까지 왼편으로 저어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우리는 역주행을 멈추고 유유히 강을 따라 내려갈 수 있었다. 모든 대원들은 아침 시작부터 역방향 노를 젓느라 땀에 흠뻑 젖었다. 이윽고 우리는 오늘 하루 내내 저어가야 할 호수 어귀에 도착했다. 저멀리 우리 앞으로 모든 카누들이 노를 저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가서 앞지르자며 재촉하는 대원들을 향해서 대장 브랜든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카누 행사는 원주민 조상들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저 내려오는 전통행사이며,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조상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할수 없다.” 우리의 카누 여정은 빨리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상들이 노 저었던 곳을 따라 조상들과 다른 부족들과 더불어 움직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를 저었던 조상들과 앞으로 노를 저을 다음 세대들을 잠시나마 생각해보라면서 그렇다면 오늘 이렇게 노를 젓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역사의 한 장면 속을 지나가는 실체적 현실임을 기억하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 카누 경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온 몸으로 만나며 카누 여정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브랜든은 누구보다 카누를 빨리 저을 힘도 있고 강의 흐름에 대해서도 잘 알며 사람들을 지도할 만한 지혜가 있는 사람이지만, 이를 남용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공동체와 다른 이들을 위해 발휘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참으로 존경스러웠고, 그의 지혜로움과 섬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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