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년 이야기] 탐욕의 문제

탐욕의 문제

이스라엘의 주곡은 보리와 밀인데, 이 보리와 밀은 모두 가을에 씨앗을 뿌리고 이듬해 봄에 거둔다. 그래서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농사력은 파종기인 가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고 그 이듬해 보리와 밀의 수확기인 봄을 지나 각종 나무 열매들의 수확기인 여름의 마지막, 곧 가을 직전을 한 해의 끝으로 삼는다. 그런데 안식년과 희년은 농사를 짓지 않는 해이므로, 가을에 시작하여 가을 직전에 마치는 한 해의 농사에 따른 구약 이스라엘의 농사력을 기준으로 삼아, 안식년과 희년도 각각 해의 시작을 파종기인 가을로 정하고, 해의 끝을 곡식과 나무 열매의 수확이 모두 끝나는 가을 직전으로 정하게 된다. 그래서 희년은 제50년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한해 전인 제49년 가을에 시작하여, 제50년 가을 직전에 마친다. 안식년도 제7년인데 정확하게는 한해 전인 제6년 가을에 시작하여, 제7년 가을 직전에 마친다. 이는 안식일이 제7일인데 정확하게는 하루 전인 제6일 저녁에 시작하여, 제7일 저녁 직전에 마치는 것과 같다. 

안식일(제7일): 제6일 저녁-제7일 저녁 직전 

안식년(제7년): 제6년 가을-제7년 가을 직전

희년(제50년): 제49년 가을-제50년 가을 직전

레위기 25:20-22에는 안식년의 땅 안식과 희년의 땅 안식이 모두 들어 있는데, 안식년은 제6년(제48년) 가을부터 제7년(제49년) 가을 직전까지이고, 희년은 제7년(제49년) 가을부터 제8년(제50년) 가을 직전까지이다.

안식년과 희년에는 모두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쉰다. 그러므로 제49년 안식년에도 땅을 쉬고, 그 이듬해인 제50년 희년에도 땅을 쉬게 되어, 2년 연속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쉬게 된다. 이처럼 한 해도 아니고 두 해나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쉬게 해야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그럼 그 안식년과 희년에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삽니까?”라는 의문과 불만이 나올 법하다. 그것이 바로 20절에 담겨 있다.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여기서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에는, 제7년(제49년) 가을의 파종 금지(희년)와 그 직전인 제7년(제49년) 봄의 수확 금지(안식년)가 모두 들어있다. 곧 희년 땅 안식과 안식년 땅 안식의 규정이 함께 겹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라는 뜻은,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의 가을에는 희년이 시작되어 심지도 못하고, 또 일곱째 해의 봄에는 안식년이므로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적의 은혜를 제시하신다. 21절,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제6년(제48년) 봄 수확기에 장차 3년 동안 쓰기에 족한 소출을 주신다는 것이다. 왜 3년일까? 그 이유는 제6년(제48년) 봄 수확기부터 제9년(제51년) 봄 수확기까지 만 3년이기 때문이다. 제6년(제48년) 봄 수확기에 장차 3년 동안 쓰기에 족한 소출을 주신다는 것은 한마디로 기적의 은혜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광야에서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동안 날마다 만나를 주시되, 5일 동안은 하루 분량을 주시다가 제6일에는 그 이튿날 안식일분까지 합하여 이틀 분량을 주신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제6일에 이틀 분량의 만나를 주신 것처럼, 앞으로 약속의 땅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과 희년을 지킬 수 있도록 그 직전 해인 제6년(제48년)에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한 소출’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시고 주관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과 희년을 지킬 수 있도록 초자연적인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안식년과 희년의 땅 안식 명령을 어긴다면, 그것은 궁핍의 문제가 아니라 탐욕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안식년과 희년 전에 먼저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한 소출을 주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필요를 채우시는 기적의 은혜를 베푸실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과 희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땅을 쉬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사를 짓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한 궁핍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이 갖겠다는 탐욕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야 한다(마 6:31-33).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는 채워주시지만, 우리의 탐욕까지 충족시켜 주시지는 않는다. 사실 탐욕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탐욕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탐욕을 가장 경계한다. 탐욕은 우상 숭배의 본질이다(골 3:5). 그리고 탐욕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약 1:15).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탐욕의 유혹을 떨쳐 내고, 죄와 사망으로 이어지고 말 탐욕이라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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