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안식과 국가의 존망
레위기 25장에서 안식년과 희년의 땅 안식을 명령하신 하나님은, 이어서 레 26장에서 경고하시며 한 번 더 말씀하신다.
레 26:27-35, “27.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28.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33.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34.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35.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
35절의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서 ‘그 땅’은 어디를 말하는가? ‘그 땅’은 그 앞의 3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갈 ‘원수의 땅’이 아니라 ‘너희의 본토’로 표현된 ‘이스라엘 백성의 본토’를 말한다. 그래서 35절의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이란 “너희가 너희의 본토에 거주하는 동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35절에서,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라는 번역은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하였으나 가나안 땅은 안식하지 못했다는 말로 오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번역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너희가 안식할 때에(베솹베토테이켐)”는 올바르게 직역하면 “너희 안식년에”라는 뜻이다. 여기서 ‘안식년’으로 번역한 단어인 ‘솹바트’는 안식일이라는 뜻도 있지만 ‘(땅의) 안식년’이라는 뜻도 있다. 대표적으로 레 25:6에서는 ‘(땅의) 안식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 레 26:34-35 문맥에서는 ‘땅의 안식’을 네 번이나 말하면서 강조하고 있으므로, 안식년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에 대한 올바른 번역은 “너희 안식년에 땅이 쉬지 못하였으나”이다. 그리고 이렇게 번역해야 뜻이 통한다.
그래서 35절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너희가 너희의 본토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 안식년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가 망하고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는 심판을 당하게 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안식년과 희년의 땅 안식을 지키지 않은 죄 때문일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그들의 탐욕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안식년과 희년이 오더라도 땅을 쉬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사를 짓는 죄를 범하게 될 것이며, 이 죄를 비롯한 갖가지 불순종의 죄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가 망하여 이방에 포로로 끌려가는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그 포로로 끌려가 있는 기간 동안 그들의 본토는 쉬게 될 것이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과 희년의 땅 안식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은 땅 안식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쫓으시어 그 땅이 안식할 수 있도록 만드실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만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것도 진실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진실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 들이시기도 하고 또 반대로 내쫓으시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과 사람과 땅을 모두 중심에 두고 읽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심이 바로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가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 구약 윤리 삼각형의 세 꼭짓점이다.
“하나님, 이스라엘, 그리고 땅. 이상은 이스라엘 세계관의 세 기둥이며 그들의 신학과 윤리학의 주요 요소들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삼각관계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각각의 관계는 다른 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서로 작용했다.”
그래서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에서도 읽어야 하지만, 땅의 관점에서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주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땅의 관계, 사람과 땅의 관계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레 26:27-35에 담긴 하나님의 경고가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에서 이루어지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멸망해서 그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고, 그 기간 동안 그 땅은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게 되었다(대하 36:15-21). 이처럼 안식년과 희년의 토지 안식은 이스라엘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요한 주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