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년 이야기] 희년 정신

[희년 이야기] 희년 정신

예수님은 희년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눅 4:18-19, 43). 그런데 희년 정신의 근본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고, 희년 정신의 정수는 대속의 십자가 정신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희년 정신의 근본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땅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팔릴 수 없으며 사람은 하나님의 땅에 사는 거류민과 동거자에 불과하다는 사실(레 25:23),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사람의 종으로 팔릴 수 없다는 사실(레 25:42)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희년 정신의 근본임을 잘 나타낸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모두 강조하신 것은 바로 ‘존재의 변화’이다. 영혼의 중심에 욕심과 죄로 물든 자아 대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모시고 그 통치에 순종하고자 하는 내면의 거룩한 변화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이다. 

존재의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행동의 변화가 나타난다. 존재의 변화가 본질이다. 존재의 변화가 없는 한, 행동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게 희년 실천이라는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아직 존재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영혼의 보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여전히 욕심과 죄에 오염된 자아가 왕 노릇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다음으로, 희년 정신의 정수는 대속(代贖) 정신 곧 십자가 정신이다. 가난 때문에 땅과 집과 자유와 가족을 잃은 가난한 친족을 위해, 자신이 대신 값을 치르고 그 가난한 친족의 땅과 집과 자유와 가족을 회복시켜주는 근족(近族, 가까운 친족)의 ‘대속’ 정신이다(레 25:24-25, 47-49). 그런데 근족의 대속 정신은 바로 ‘십자가’ 정신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으로 희년을 선포하셨다.

‘여호와의 종’은 ‘그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속건제물’로 바치시고(사 53:10-12), ‘인자’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신다(막 10:45). 여기서 ‘대속물’로 번역된 헬라어 ‘뤼트론’은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에서 ‘토지를 무르는 값’, ‘사람을 속량하는 값’(속전)에 사용되는 단어이다(레 25:24, 26, 51, 52). 

곧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속건제물로 바치셔서 우리의 죄를 속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셔서 우리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토지와 자유를 되찾아 주셨다. 그런데 구약에서 토지와 자유를 되찾는 때는 바로 희년이며, 빚을 탕감 받는 때는 바로 안식년이다. 

요컨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자기 목숨을 ‘토지 무르는 값’과 ‘속량하는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가 잃어버린 ‘토지’ 곧 ‘하나님 나라 기업’과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 곧 ‘죄와 마귀와 사망의 종노릇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속해 주심’으로써 곧 ‘죄의 빚을 탕감해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안식년’을 선포해 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안식년과 희년을 선포해 주신 것이다. 이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본받는 것이 바로 희년 정신의 정수인 것이다. 

예수님 없이 희년은 없다(No Jesus, No Jubilee). 그리고 희생 없이 희년은 없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희생 없이 희년 교회와 희년 세상은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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