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포, “중대하고 기쁜 소식”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 고대사』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한 실화가 소개됩니다.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하기 위해 2차 원정하여 18개월 동안 전력을 다 해 성을 에워쌌다. 예루살렘은 포위된 것과 동시에 그곳에 심한 두 재앙, 즉 기근과 역병이 닥쳐 백성들은 크게 멸망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비록 옥에 갇혀 있었지만 쉬지 않고 외치면서 큰 소리로 ‘성문을 열고 바벨론 왕을 받아들이라’고 선포했다. 그렇게 해야만 백성들과 그들의 온 가족이 보호를 받을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도시에 머무르면 반드시 기근으로 멸망하든지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국가 통치자들과 백성들은 그의 예언과 선포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청하지도 않았다. 백성들은 선지자가 군중들을 낙심시키며 처참한 비난으로 그들의 기민함을 약화시킨다며 그를 미치광으로 취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아는 자신의 선언과 예언을 따르지 않으면 예루살렘은 반드시 점령되고 처참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위협적인 태도로 경고했다.”
선지자 예레미아처럼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사람을 희랍어로 “카타그겔루스”라 했습니다. 이 낱말은 “전령자,” “선언하는 사람,” 또는 “설교자”로 번역됩니다. 동사 형 “카타그겔로”는 예레미아의 선포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중대한 사실이나 계획을 “선포하다,” “공지하다,” 그리고 “알리다”는 의미입니다. 이 낱말은 기쁨과 축제의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낱말의 특징적인 색깔은 선포나 알림이 권위를 갖고 그 내용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고전 그리스어에서는 전쟁을 선포하거나 축제와 같은 기쁨의 소식을 전할 때 이 낱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요세푸스의 글에 요셉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두 번째 환상을 보내시니, 처음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이었다. 태양이 달과 별들을 데리고 땅에 내려와 요셉에게 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환상을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때 그의 형제들이 그곳에 있었다. 요셉은 형제들의 마음 속에 악의가 일어나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 환상이 무엇인지를 해석해 달라고 했다. 아버지 야곱은 그 꿈을 숙고함과 동시에 슬기롭고 민첩하게 그 뜻을 추측하고 기뻐했다. 그가 놀라고 즐거워 했던 이유는 이꿈이 미래에 그의 아들에게 행복한 일을 선포하는 중요한 예언이기 때문이었다. 이 꿈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요셉은 달과 태양과 같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별들과 같은 그의 형제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높임을 받을 때가 온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기쁨의 소식을 알린다는 카타그겔로는 그 사용에 있어 언제나 무게와 권위가 수반됩니다. 이 낱말은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아름다운 믿음을 세상에 알릴 때사용됩니다. 바울이 바나바에게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카타그겔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라고 제안할 때, 이 낱말이 사용됩니다. 영어 성경은 카타그겔로를 “preach 설교하다”로 번역합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설교한 말씀이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조사해야 했습니다. 왜하면 전파된 말씀은 권위가 있고 중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초기 설교자들이 전했던 권위있는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초기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한 바울과 바나바는 살라미에 있는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카타그겔로). 바울이 베뢰아에서 전했던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사적인 의견을 선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철학자이며 소설가였던 괴테는 “나는 내 확신에 대하여는 너무나 의심이 많습니다”라고 솔직히 고백한 후에, “당신의 확신에 대해 말해주세요”라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초기 설교자들은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며, 전파하는 방법이 무엇이든 설교자는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이 힘을 다하여 수고하며 전파하는 분은 그리스도 한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초기 설교자들은 교회 주변에 있는 달콤한 사상이나 철학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의 주요 목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대면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초기 설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됨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내용이 그들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고, 예수 안에서 영원한 세계가 열리며, 또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진다는 것을 전파했습니다.
넷째, 초기설교자들은 인류가 더듬어 찾아왔지만 찾지 못했던 하나님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 이제 열렸다고 선포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살던 그리스의 아테네를 방문한 바울은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영적 혼란 속에 잡혀 있던 아테네 사람들에게 바울이 전해 줬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초기 설교자들은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기쁨의 소식이었습니다. 19세기 설교자 찰스 스펄전은 오늘의 설교자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언제나 영원무궁토록 그리스도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온전한 복음입니다. 그의 품성과 그의 직분과 사역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유일한 위대한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그 구주에 대해서 들을 필요가 있고 또한 그에게 나아가는 길에 대해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타락, 거듭나야할 필요성, 속죄를 통한 죄 사함, 그리고 믿음으로 얻는 구원, 이런 것들이 우리의 칼과 창이요, 전쟁에서 이기는 무기입니다. 구원이야이야 말로 우리가 입술을 열어 선포해야 할 가장 위대한 주제입니다. 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이 전해야 할 주제입니다.”
참된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행위를 철저하고도 진중하게 선포하는 자입니다. 복음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중대하고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