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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존엄,” 그리스도인의 성품

“존엄,” 그리스도인의 성품

초기 교회 성도들을 특징 짓는  성품이 있었습니다. 성도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성질이 있었습니다.  이 성품을 나타내는 고전 희랍어는 형용사  “셈노스”와 명사 “셈노테스”입니다. 이 낱말을 직역하면 “존경의 가치가 있는 사람,” “존엄,” “경건한 사람,” 또는 “정직”으로 번역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셈노스는 다음 구절들에 사용됩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에서 “정중”으로,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에서 “정숙”으로, 그리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에서 “행실이 거룩하며”로 번역되었습니다. 명사형 셈노테스는 다음 세 구절에 사용됩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단정함으로 번역된 단어가 셈노테스입니다. 교회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에서 “공손함”으로, 가르치는 교사는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에서 “단정함”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셈노스와 셈노테스는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들은 세속 그리스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배경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전체에 이 낱말보다 더 이상 장엄한 단어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품성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들의 일반 그리스어 용법을 살펴봅니다.

   첫째, 이 단어들은 특히 신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들은 위엄이 있고, 거룩하며, 숭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들이 거주하는 건물을 “성전”으로 부르며, 아폴론은 “위엄 있는 사령관” 아이스킬로스(Aeschylus)에 의해 부름을 받았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신들에게 바치는 희생제물은 거룩한 것이어야 한다 ”고 표현했습니다. 모든 경우에 사용된 단어는 셈노스인데, 이 단어 속에는 신성의 위엄이 담겨있습니다.  

   둘째, 이 단어들은 왕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평민으로 이집트의 황제가 된 아마시스는 왕궁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술을 마시고 심심풀이 놀이와 농담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황제의 품위와 격을 떨어뜨리자, 그를 아끼는 한 친구가 이렇게 조언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 당신은 장엄한 왕좌에 앉아 하루 종일 업무를 수행해야 하네.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이 위대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당신은 더 훌륭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네. 현재 이 상태에서 당신이 하는 일은 결코 왕으로서 위엄을 나타내지 않고 있네.”

   셋째, 이 낱말들은 언어 사용에 있어서 그리고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위엄 있고 품위 있는 것을 나타낼 때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들입니다. 훌륭한 음악을 표현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래의 리듬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양한 리듬 중에서도 영웅적 운율이라고 하는 시의 리듬은 위대하다.” 위대한 음악을 셈노스로 표현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는 몸과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음악을 강조합니다. 그는 음악의 도움 없이는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며 “음악을 가장 장엄하게 (셈노스) 만들라”고 말합니다.

   넷째, 이 단어 셈노스는 웅변술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정치가이며 웅변가인 페리클레스의 평판에 관해서 언급할 때,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주제가 넘고 다소 오만한 말투를 가졌으며, 그의 거만함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 들어 있다. 반면 그가 사교계에서 보여준 재치와 사근사근함과 우아한 (셈노스) 연설은 칭찬할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수사학』에서 시인의 글 솜씨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사시 작가들이 사용하는 이상한 언어들은 존엄성과 자기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이 말들은 시인들의 은유이다.”

   다섯째, 셈노스의 또 다른 용도는 무덤가에 있는 돌 비석 위의 비문에 매우 자주 사용되는 것입니다. 비문은 훌륭하고 고상하게 살다가 안식을 취한 사람들을 묘사하고 경의를 표할 때 사용하는 가장 선호하는 말들입니다. 이 단어는 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통해 쌓아 놓은 위대한 업적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초기 교회가 이 단어들을 사용될 때는 복음이 온 세계로 뻗쳐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교회는 이교도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고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던 수단은 설교가 아니라 신자 개개인의 삶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보고 그리스도께 돌아왔습니다. 그 삶은 셈노스, 즉  존엄이었습니다.

   지옥보다 더 극한 고통의 장소였다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경험으로 인간의 존엄을 설명합니다. 인간의 생명이 짐승처럼 취급당하는 그곳에서 그는 인간의 두 본성에 직면합니다. 하나는 식량 부족, 수면부족, 그리고 가혹한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을 받는 환경에 아무 저항없이 지배당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하여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후자는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상황에서도 남을 위로하며 마지막 빵 조각까지 나눠주는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이 두 본성을 통해 그는 이런 진리를 말합니다. 환경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결정을 해야 했다. 매일 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죄악과 범죄가 가득 찬 이 곳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느냐 보통사람처럼 사느냐는 한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결정됩니다. 핍박받는 것이 자신들의 일상이었던 초기 교회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그들의 삶에 위엄과 존엄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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