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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성령 (2), “또 다른 보혜사”

성령 (2), “또 다른 보혜사”

 “보혜사” 혹은 “성령”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파라클레토스는 풍성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단어의 번역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아 교회의 아버지로 일컬어 지는 교부 (敎父)들의 글에도 이 사실이 발견됩니다. 오리겐 (Origen)은 이 낱말을 복음서에서는 “위로자”로, 그리고 서신서에서는 “변호인”로 번역합니다. 예루살렘의 감독 시릴 (Cyril)은 파라클레토스를 “위로자”로 번역합니다.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우리를 위해 중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터툴리안 (Tertullian)은 이 낱말을 다양하게 번역합니다. 어떤 경우는 단순히 음역하여 “파라클레토스”로, 때때로 우리의 주장을 지지하는 “옹호자”로, 그리고 우리의 탄원을 승소하게 하는 성공적인 법률 신청인으로 번역합니다. 이 외에도 이 단어는 “상담자,” “고소자,” “방어자,” “돕는자,” “대리자,” “친구,” 심지어 “하늘의 천사”라는 뜻도 있습니다. 사실, 이 단어의 뜻은 너무 넓어 정확한 의미를 사람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낱말의 근본 의미는 우리를 돕고, 우리의 연약함을 보호하고 변호하며, 우리를 격려하고 인도하여, 우리의 삶이 최고질이 되도록 일하는 사람입니다. 

   고전 그리스 사회에서 파라클레토스가 두드러지게 사용되는 분야는 법적 소송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고발당한 사람의 친구였으며, 그는 피의자의 인격에 관해 상세한 진술을 하기 위해 소환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라클레토스는 판사들의 동정을 얻기 위해 최상의 호의적인 관점에서 자기 친구를 변호하는 사람입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생활을 생생히 적고 있는 필론의 글에는 이 낱말이 빈번히 사용됩니다. 당시 로마의 장관 플락쿠스는 그곳 유대인들을 보호하며 선의적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호의를 잃은 플락쿠스는 재산을 몰수당하고 섬으로 추방됩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찾아와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보혜사 파라클레토스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황제가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자신들의 입장을 더 강력하게 변호해 줄 파라클레토스를 원했습니다. 새로 부임한 플락쿠스 후임자는 유대인의 파라클레토스가 됩니다. 그의 뛰어난 변호로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이국에서 시민권 없이 재산을 빼앗기고 수시로 공개 체찍질 당하던 유대인들의 시민권을 회복시킵니다.

   요셉 이야기를 기록한 필론의 저술에는 파라클레토스를 하나님 자신이라고 언급합니다.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이제는 종이 되어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고개를 떨군 그들은 요셉이 자신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그들에게 요셉이 말합니다. “낙심하지 말라. 당신들이 나에게 한 모든 행동을 내가 온전히 용서한다. 당신들이 내게 했던 일을 변호하기 위해 어떤 파라클레토스도 필요하지 않다.”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 극한의 재난과 불행을 가장 높고 완전한 행운으로 바꾸신 분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이셨다.” 

   『창조』에 관한 작품에서도 필론은 파라클레토스를 기술합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파라클레토스, 충고자, 돕는자도 요구하지 않는다 (누가 그분을 도울 수 있는가?). 그분은 오직 자기 홀로의 의지에 따라 인도되셨다. 하나님께서는 신성한 선물 없이는 스스로 어떤 좋은 것에도 참여할 수 없는 세상을 위해 무한하고 풍부한 호의로 그것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 결정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은혜는 자신의 위대함과 능력에 따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는 자에게 합당한 비율로 부어진다. 그의 권능은 무한히 더 크지만, 창조된 것이 그분의 모든 위대함을 받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적합하게 부어진다.” 은혜의 주체인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응에 따라 은혜는 달랐습니다.    

   이런 사상을 담은 파라클레토스는 유대인의 말로 음역되어 사용됩니다. 그들은 율법의 한 계명을 지키는 자는 파라클레토스 (변호자)를 얻게 되고, 한 가지 계명을 어긴자는 파라클레토스 (고소자)를 얻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만약 우리가 의로움과 거룩함이 없이 발견된다면, 누가 우리의 파라클레토스가 될 것인가?”라고 질문했습니다.  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을 돌보시고 변호해준다고 믿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파라클레토스가 처음 소개되는 요한복음 14장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십자가에 죽어 자신들을 떠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하고  마음 속에 걱정이 꽉 차 있었습니다.  이때 파라클레토스가 나타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 (파라클레토스)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 말씀은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시는 것이며, 둘째는 그 보혜사는 믿음의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며, 셋째는 보헤사가 믿음의 사람들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보혜사를 “또 다른 보혜사”로 표현합니다. 이전에 보혜사가 있었는데, 이제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는 뜻입니다. “다른”으로 번역된 희랍어 “알로스”는 성질과 기능이 똑 같은 것 중에 다른 하나를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2:1절은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 자신이라고 밝힙니다. 첫번째 보혜사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그들의 아픈 병을 치료하셨고, 생명을 위험하게 했던 태풍을 잠재우셨으며, 삶을 혼란케 한 귀신을 쫓으셨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그들의 허기를 없이 했습니다. 

   약속하셨던 보혜사는 오순절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동일한 일을 하십니다. 차이가 있다면, 예수님은 몇몇 제자들에게 보이셨고, 또 다른 보혜사는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중동지역에 계셨었고, 파라클레코스는 세계 모든 곳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짧게 계셨었고, 파라클레토스는 영원히 함께 있습니. 바울은 파라클레토스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채우 주실 것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현재 우리를 돕는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옆에 계신 성령은 우리가 직면한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변호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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