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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복음 ③, “기독교 신앙의 심장”

복음 , “기독교 신앙의 심장”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 왕을 배반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충신이었던 아히도벨과 공모하여 왕을 죽이려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다윗 왕 진영인 요압의 군대와 싸움에서 죽게 됩니다. 이 때 한 군인이 달려가서 이 소식을 왕에게 전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을 전하다”는 말을 유대사회에서 “유앙겔리조”라 했습니다. 이 낱말의 명사형 “유앙겔리온”은 아이가 출생했다는 “기쁨의 소식”이나 젊은 커플이 혼인식을 올린다는 “좋은 소식”을 의미했습니다.  이 낱말은 발전하여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는 사람” 혹은 좋은 소식 자체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고전 로마 제국에서 유앙겔리온은 황제의 출생과 그 기념일, 그리고 취임식을 의미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했던 터키의 프리에네 (Priene)지역에서 발견된 비문에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신 (god)의 탄생일은 세상에 그의 이름으로 선포된 기쁜 소식의 시작이었다.” 백성들은 황제가 자신들의 인생에 기쁨이 있는 행복한 삶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이곳에 사용된 “기쁨의 소식”은 유앙겔리온을 번역한 것입니다. 

   간략하게 살펴 본 것처럼 “복음”으로 번역하는 희랍어 “유앙겔리온”은 복합적인 배경을 지닙니다. 기쁨의 물결 혹은  좋은 소식을 뜻하는 이 낱말을 연구할 때 우선시 되는 것은, 유앙겔리온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깊은 중심이며 심장이라는 것입니다.  유앙겔리온은 기독교 전체 메시지의 요약을 담은 말입니다. 이 낱말은 구체적이고 특징적인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이 단어가 인간 사회 질서와 개인 삶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합니다.   

   유앙겔리온, 즉 복음이 인류와 관련된 신약의 내용을 살펴봅니다. 첫째, 유앙겔리온은 “희망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 진리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복음 안에서 받은 소망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이제 그 복음은 온 세계로 펴져 나가고 있습니다. 나 바울은 바로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물질만으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절망과 세상의 절망 외에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복음 안에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유앙겔리온은 “은혜의 좋은 소식”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역시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진리를 깨닫고 지금도 그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셋째, 유앙겔리온은 “평화의 좋은 소식”입니다. 기독교와 아무 관계 없던 로마 사람 고넬료를 만나면서 베드로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백성의 주님이십니다.” 신앙인의 삶을 언급하면서 바울도 동일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신을 신으십시오.” 사람이 혼자 살려고 노력하는 한 그는 필연적으로 분열된 성격을 얻게 됩니다. 복음은 한 인간의 불행했던 옛 모습을 종식시키고, 대신 완전히 통합된 한 인간의 가능성을 가져다 줍니다.
  넷째, 유앙겔리온은 “불멸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복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누구든지  희망이 없는 존재로 슬퍼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죽음이 인간의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소멸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떠나는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불멸하여 영원한 삶을 소유합니다. 

   유앙겔리온, 즉 복음이 한 개인과 관계된 질서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첫째, 유앙겔리온은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믿어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복음은 자연적으로 습득되거나 조상들의 유물로 상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께서 가져 오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한 개인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유앙겔리온은 먼저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면서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될 것이며 모든 나라에 증거될 것이다. 그 때서야 세상의 끝이 올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의 임무를 제자들에게 위임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은 받은 사람이 전파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기쁨의 소식인 복음을 받았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기전까지는 진정한 복음을 발견한 것은 아입니다.   
  세번째, 이 기쁜 소식인 유앙겔리온을 확산시키는 직임은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위탁되어졌고 사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라고 언급하면서, 우리에게 위임된 복음전파를 강조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해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그것이 내가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내릴 것입니다.”

   넷째, 유앙겔리온은 한 개인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자”로 평가합니다.  복음을 얻는 것은 한 개인의 인생에 특권이며, 동시에 의무를 뜻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삶에 생명을 준 은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인생 최고의 기쁨인 복음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바칩니다.    다섯째, 유앙겔리온은 사람이 놓칠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 복음을 받아 들인 것은 아닙니다”라고 밝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거듭 기록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복음을 수용할 수도 있지만 거절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줄수만 있지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복음은 줄 수만 있지 강요할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은 복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멸의 자기 영혼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전하신 중심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표현입니다. 사람은 이 복음이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그것을 소유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복음을 “말로만 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과 큰 믿음 가운데서 전했다”고 간증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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