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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런치코칭]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

여러분들은 인생에서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그리고 하루에 얼마 정도를 기도에 투자하십니까? 혹시 기도의 아버지라고 불린 사람을 기억하시는지요? 네, 맞습니다. 바로 조지 뮬러를 기도의 아버지라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기도의 어머니로 불리워질 수 있을까요? 바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모니카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모니카에 대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사랑 속에서 기도의 눈물을 먹고 성장했지만 그러나 그는 사고뭉치였습니다. 열일곱 살 때 고향 타가스테를 떠나 큰 도시인 카르타고(Carthage)에서 십여 년 동안 이름도 모르는 낯선 여자와 동거하며 죄악으로 가득한 생활을 하였고 또한 마니교라는 이교 신앙에 빠져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잊으려 노력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의 신앙으로부터의 도피와 세속으로의 타락은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어거스틴의 타락을 바라보면서 어머니 모니카는 절망과 고통과 탄식의 눈물을 흘리며 죽음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어거스틴은 28세 때에는 더 큰 세상의 출세를 향하여 카르타고를 떠나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어머니 모니카를 속이고 떠났습니다. 그 후 어거스틴은 로마에서 2년을 머문 후에 다시 로마를 떠나 밀란으로 갔습니다. 

어거스틴이 31세가 되던 385년 봄에 아들 어거스틴이 우여곡절 끝에 밀란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를 만났고 그에 대한 호감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모니카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아들의 손을 붙잡고 암브로시우스 감독에게로 달려가서 함께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생수처럼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영혼을 위해서 울면서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어머니는 전보다 더 열심히 서둘러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암브로시우스의 말씀을 마치 생수처럼 들이켰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하나님의 천사처럼 사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그 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슬픔과 아픔과 고통의 눈물은 30여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슬픔의 눈물이 결국에는 기쁨과 행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끈질긴 기도로 결국 아들은 돌이키고, 밀란의 감독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통해 어거스틴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즉 “눈물의 기도로 기른 자녀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모니카는 아들이 당시의 위대한 주교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 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변화된 아들과 함께 고향 타가스테로 귀국하려고, 로마의 오스티아(Ostia) 항구로 와서 머물다 그만 말라리아에 걸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때 모니카의 나이는 56세였고, 어거스틴은 33세였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의 고백록에는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과 애도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그 중 모니카가 두 아들에게 남기는 이야기는 매우 진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모니카는 평소 남편(파트리키우스, Patricius) 옆에 묻히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이미 남편의 묘 옆에 자신이 묻힐 자리를 마련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병상에 누운 후 잠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자신을 이곳, 타향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모니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몸은 어디에 묻어도 좋다. 그 일로 인하여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 단 한 가지만 너희에게 부탁한다.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모니카의 이 당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녀는 혹시 타향에서 죽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서의 자유함이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으로 온전한 안식 가운데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신앙의 유산을 물려 받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모니카는 그녀의 무덤에 아름다운 비석을 세우거나 꼭 고향에 묻어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관심은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단, 모든 죄가 용서함 받고 깨끗케 되는 그곳에서 기억되기를 원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어머니 모니카를 일컬어 ‘눈물로 기다리는 분’이라고 칭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다면 그것은 오직 아버지께서 제게 이런 어머니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이 이룬 놀라운 업적이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수 놓인 기다림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자식에 대한 변함없고 끈질긴 믿음과 기도의 힘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 방탕과 죄악의 밑바닥에서 어거스틴을 이끌어 결국에는 기독교 신앙과 믿음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였습니다. 무려 삼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육체의 향락과 세속적인 사교와 이교 철학 등에 탐닉했던 어거스틴을 일깨워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만들었던 어머니 모니카, 그녀의 끈질긴 기도의 기다림은 현재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참으로 귀감이 되는 분이십니다. 그 어머니의 마지막 당부,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라는 말씀 너무나 감동이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아마도 이미 부모가 되시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혹시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신 분은 없으신가요? 그 자녀를 위한 기도를 멈추게 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더 기도를 하겠다면 언제 시작하고자 하십니까? 정말로 그럴 용기가 혹은 힘이 없으시다면 인생 최고의 코치가 되시는 주님께 먼저 달려 가시길 기도합니다. 

라이프코치 줄리아김(GCLA 글로벌코칭리더십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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