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브런치칼럼(코칭) 영적 코치, 디엘 무디

[칼럼:브런치코칭] 영적 코치, 디엘 무디

영적 코치, 디엘 무디

일반적으로 “코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할 때는 보통 “피코치가 원하는 지점까지 옮기는 프로세스”라고 답변을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크리스천 코칭과는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일반 코칭과는 달리 크리스천 코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점으로 그 피코치를 옮겨주는 과정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이야기 보따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현대 대중 복음 전도 운동의 창시자이며 찰스 스펄전과 함께 19세기에 가장 크게 활동했던 디엘 무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디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을 끝으로 생계를 돕기 위해 농사일을 거들어야만 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무디는 17세 때,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와 메사추세츠의 클린톤에서 신문 배달 일을 하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날 그만 실수로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그후, 무디는 보스턴에 있는 삼촌의 구두 가게로 자리를 옮겨 구두 수선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무디에게 4가지 조건을 걸고 일을 시켰는데 그 조건들 중에는 주일에 주일학교를 출석해야 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디의 꿈은 빨리 돈을 벌어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었고 신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무디가 보스턴에 있는 교회에 나간지 1년이 지난 어느날 그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에드워드 킴볼이 그를 찾아와 진지하게 거듭남에 대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젖어있던 무디는 그의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고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동안,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는 성령체험을 하게 됩니다. 무디는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는 구원을 받자마자 너무 기쁜 나머지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기뻐해 주세요. 1837 2 5일은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생일이지요? 18년이 지난 오늘 4 21일은, 성령으로 제 영혼이 거듭난 생일입니다.”

무디는 거듭난 후 플리머스 회중교회에서 성경 지식을 쌓게 되었고, 교회학교 교사로 시작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카고 빈민가의 어린이들에게 전도하는 어린이 사역을 하였고 2년 뒤인 1875년에는 빈민가에 교회를 설립하여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그의 설교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비록 말투는 투박하고 발음과 문법이 서툴렀지만 사람들은 그가 외치는 단순하고도 호소력 있는 설교에 흠뻑젖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린이 전도와 시내에서 가장 불량한 곳, 부두 노동자들, 역 대합실, 여관 뒷골목, 감옥의 죄수들, 거리 모퉁이의 실업자들, 병원의 환자들을 찾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남북 전쟁때는 전쟁터에서도 설교를 했으며 많은 군인들이 무디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는 1867년 영국을 방문해서 찰스 스펄전과 죠지 뮬러와의 교류를 통해 더욱 깊은 영향을 받은 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게 됩니다. 하루에 한 명일지라도 꼭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 무디를 통해 하나님은 미국과 영국에서 큰 부흥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1876년부터 시작되어 1881년까지의 미국의 전도집회에서 무디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짧게는 몇 주에서부터 길게는 몇 달에 걸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후에도 무디는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복음이 필요한 곳,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될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했고 무디는 그의 생애를 통해 2억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또 무디 성서학원과 무디출판사를 설립하여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양성했고, 문서 선교를 통해 세계 복음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펄전과 동일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교파를 초월하여 복음을 전했던 디엘 무디는 1899년 12월 22일 62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디엘 무디가 떠나고 12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의 이름이 세기를 넘어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기억되고 불리어 지는 것은 그가 남긴 신앙의 유산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무디가 전도 집회때마다 인간의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일시적 신자들을 만들어냈다고도 하고 또 그가 종교적인 열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학문은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 지성주의 기독교인었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는 성공적인 사역을 했고 세계적 명성을 얻었음에도 늘 겸손한 사람이었고 진심으로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많은 문법적 오류등으로 설교에 결함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복음만을 위해 살았고 하나님 만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마음껏 쓰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돈에 대해 너무도 깨끗했기 때문에 돈이 그에게 시험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방법을 알았고 능력도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역 안에서 사용되기를 즐겨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온전히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이 세상에 주님의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회심하고 결심하고 그리고 성령이 이끄신 그 결심대로 살았던 디엘 무디, 그는 참으로 멋진 신앙의 유산을 남기고 떠난 탁월한 크리스천 코치의 삶을 살고 간 것 같습니다.

이세상 최고의 코치는 바로 성령님이실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이 피코치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늘 자신의 삶을 코치하던 디엘 무디 또한 탁월한 영적 코치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이 세상에 주님의 흔적을 그렇게도 많이 남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Advertisment
- Advertisment -

최신 칼럼

인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