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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런치칼럼(코칭)] 환대를 실천하는 삶

환대를 실천하는 삶

믿음과 섬김의 공동체에서 행해지는 조화로운 실천들

환대를 실천하는 공동체들은 사람들과 나눈 가장 소중한 자원이 교제와 우정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넘어 그들을 공동체 생활 가운데로 맞아들입니다. 하지만 우정 없이 도움만 제공하는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료 급식소를 설치한 교회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다목적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예배 공동체의 교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빚어지곤 합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우리의 시간과 관심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공헌을 가치 있게 여겨 주는 공간을 필요로 하며, 환대를 실천하는 공동체는 사람들이 가져오는 선물을 귀중히 여깁니다. 자신이 공헌할 것이 없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외롭고 고립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자신의 공헌이 가치 있게 여겨질 때 힘을 얻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이 기꺼이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약함과 불완전함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공헌하는 것에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브런치 칼럼은 크리스틴 폴(Christine D. Pohl)의 환대(Hospitality, book title: Living into Community)에 관한 글로 시작했습니다.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삶과 가치를 추구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죄인이었음에도 기꺼이 받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서 표현하는 삶의 실천적 태도를 드러내 주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환대를 실천하는 삶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크리스틴 폴은 기독교 환대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집과 교회가 겹쳐지는 곳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집을 개인적인 공간이자 동시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중요한 현장이라고 생각할 때 치유와 개인의 변화와 공동체 형성을 위한 장소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현대인들의 삶에 있어서 다소 불편을 초래하는 모습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점점 더 사람들은 개인과 가족 중심의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 삶의 모습을 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기에 더욱더 가족적인 분위기를 경험하는 환대에 감격합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유학생들이나 타문화권 이민자들의 경우가 그럴 것입니다. 

밴쿠버에서 타문화권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하는 한 선교사는 그러한 경우들을 많이 경험한다고 합니다. 개인의 사생활과 자신만의 공간을 중요시하는 젊은 친구들과 달리 유학생들은 따뜻한 환대를 통해서 고마움과 마음의 평안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어렵지 않게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성경은 도움이 필요한 부류에 ‘나그네들’을 포함시키고 그들을 환대하고 그들의 사정을 살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23: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신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그렇습니다. 크리스틴의 말대로 집이 교회와 연결된 장소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들의 집은 나그네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자연스런 환경이 되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중요한 현장이 되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시 곳, 그곳은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성령이 일하시는 곳이 됩니다.  

환대의 현장이 항상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크리스틴은 환대를 받은 사람이 우리를 배신했을 때, 혹은 그에 대한 감사와 진실함이 없어 보일 때 우리는 종종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면서 좋은 면만 부각시키고 힘든 면을 감춘다면 그것은 진실한 것도 아니고 유익하지도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서 환대를 실천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진솔하게 나누는 것은 환대를 통해서 얻는 유익과 교훈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나눔은 공동체가 더욱 추구해야 할 교회의 본질을 수월하게 실천하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환대의 실천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중요한 삶의 실천이 될 것이며 그러한 공동체와 성도들에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마 25:35).

또한 사도 요한은 ‘나그네된 자들을 환대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라고 말씀합니다(요삼 1:5).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롭게 된 이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들이게는 그들의 손으로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실천적 삶의 태도가 될 것입니다.

크리스틴은 실제의 삶 속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히 피상적인 관계에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더 견고한 공동체를 만들기를 거부하는 교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주일 예배와 간헐적인 교회 활동에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개인적으로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적당한’ 실천들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미온적으로나 건성으로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손상시킨다고 크리스틴은 말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중한 것과 미온적인 것은 다르고, 안식이 필요해서 숨 고르기를 하는 것과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나아가서 환대를 실천하고 약속을 지키고 진실하게 말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선해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을 빗겨가고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크리스틴의 말에 따르면 우리들의 환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고 깊이 묵상한다면 과연 우리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은 무엇일까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기꺼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아지신 분, 그러나 부활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영광스런 그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 그분의 신실한 사랑과 실천에 반응하는 것은 바로 진실하게 환대를 실천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이며 이로써 신실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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