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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런치코칭] 선교적 코치, 윌리암 케리 

선교적 코치, 윌리암 케리 

요즘 이곳 밴쿠버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예년과는 전혀 다른 날씨 때문에 많은 어려움들이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근대 선교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케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윌리암 캐리는 1761년 8월 영국 노스햄프톤(northampton)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걸어서 다니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구두 수선은 전도 유망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캐리는 아버지의 권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구두수선공이 되었습니다.

1779년 캐리가 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한 기도모임에서 히브리서 13장 13절의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는  말씀을 통해 깊이 깨닫고 그동안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후 그는 그 어느 것보다도 성경 공부에 전념하고 침례교에 들어가 활동하여 평신도 목회에 주력하였습니다. 캐리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해 많은 공부와 히브리어, 헬라어 공부도 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1788년 그의 나이 27세에 침례교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를 받게 됩니다. 

그 당시 영국은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가 이끄는 영적 부흥운동이 전 영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으나,  아무도 세계선교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캐리도 목회에 전념하느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캐리는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며  태평양의 많은  섬들과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삶에 대해 자세히 쓴 “쿡 선장의  항해기 (Captain Cook’s Voyages)’ 라는 책을 읽던 중 넓은 미지의 세상과 그곳에 사는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탁월한 코치이신 선교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세계 선교에 눈을 뜨게 된 캐리는 세계 선교에 무감각한 교회를 일깨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으로 교회를 깨우고 세계 선교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1792년 봄 그는 ‘이교도 개종에 대한 크리스천의 의무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통해 세계 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와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당시  이 책은 루터의 95조항과 함께 베스트 셀러가 되어, 세계 선교 열풍을 전 유럽으로 확산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캐리는 침례교회 연합회 모임에서 이사야서 54장 2~3절의 “네 장막터를 넓히라.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는 말씀을 전하며, 간절한 기도 가운데 여러 목사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심었습니다.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서계 선교의 역사를 이루실 때인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날 그의 비전이 넘치는 메세지에 감동을 받은 목사들이 바로 다음날 유명한 침례교 선교회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1793년 캐리가 32세 되던 해, 그는 대가족을 이끌고 인도에 선교사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인도는 선교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인도 회사로부터 숱한 방해와 적대 속에서 사역을 시작해야만 했고, 말라리아, 다섯 살 된 아들의 죽음, 아내의 우울증, 인도인 개종자가 없는 사역 등으로 수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결국, 그는 동인도 회사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덴마크 땅에 소속된 세람포로 사역지를 옮기고, 그곳에서 34년의 생애를 보내면서 세람포를 인도에서의 침례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복음 전파와 학교설립, 인쇄시설 설립과 성경번역등으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1800년 캐리는 공동 생활이 선교에 여러가지로  효과적이라고  확신하고 여러 가족을 한 공동체로 묶어 공동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캐리와 윌리암 워드 그리고 죠슈아 마쉬맨은 세람포르의 삼총사라 불리웠는데, 23년간 팀을 이루어 서로간의 긴밀한 사랑의 교제로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 와중에 대형화재로 인해 수년간 작업한 것이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삼총사는 팀웍을 새로이 갖추고 다시 도전하여 결국 수 많은 중국어, 버마어, 말레이어등 44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 출판했습니다.  그가 인도에 끼친 영향은 언어학적 업적, 교육적인 공로, 목회사역뿐만 아니라 과부의 화형이나 유아살해 같은 인도의 나쁜 관습을 폐지하고 좋은 전통을 계승시켜 나가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캐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함으로 인도 선교의 기초를 쌓았습니다.

캐리는1834년 73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의 밀알이 되어 그토록 사랑했고 헌신한 인도 땅 세람포에 묻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윌리암 캐리는 그칠 줄 모르는 뜨거운 선교의 열정과 위대한 믿음으로 18세기 세계 선교의 불을 지핀 인물이었습니다. 조국을 떠나 낯선 나라 인도에서의 헌신된 삶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주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된 그의 아름다운 발자취는 천국에서 빛날 것입니다. 

선교는 진정으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탁월한 코치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방법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크리스천 코칭의 문화 중 섬김의 자세가 있는데, 윌리암 캐리는 오로지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 뜨거운 선교적 열정만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진실된 크리스천 코치는 우리의 구석 구석을 잘 아시는 주님의 그 사랑을 전하는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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