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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순수함,” 완전히 맡기는 태도

“순수함,” 완전히 맡기는 태도

중세기의 유럽 교회는 성경보다는 성직자의 신학적 사변 (思辨)과 성도들의 외적인 형식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면서 기독교의 전통적 가치는 힘을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 쇄신을 위해 성경과 내면의 세계를 중요시하는 소수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신앙의 중심에 두었던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개혁으로 꽃을 피웁니다. 그 때 영향을 끼쳤던 책들 중의 한 권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저자는 한결같이 신앙인의 내면 질서를 강조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내면이 선하고 순수하면, 여러분은 모든 일을 방해받지 않고 그것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꿰뚫어 봅니다. 인간은 내면의 존재로 외부 세상을 판단합니다. 세상에 기쁨이 있다면, 이것은 확실히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가 가지는 것입니다.”   

   “순수한”으로 번역되는 희랍어는 “에이리크리네스”입니다. 이 단어의 명사형은”에이리크리네이아”입니다. 형용사 형인 “에이리크리네스”는 빌립보서 1:10절에 “진실한”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영어 성경들은 이 단어를 일반적으로 두 낱말, 즉 “진실한”과 “순수한”로 번역합니다. New Jerusalem Bible은 이 단어를 “결백한”로로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베드로후서 3:1에도 나타납니다. 여기서도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진실한”과 “순수한”으로 번역하지만, “건전한” 혹은 “(마음이) 밝은”으로도 번역합니다. 우리말 성경은 동일하게 “진실한”으로 번역합니다. 명사 형인 “에이리크리네이아”는 모든 영어 성경이 “순수함”으로 번역했습니다.  

   언어학자들은 이 단어들의 어원이 “체 안에 든 곡물을 흔들고 까불러서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뜻의 희랍어 “에이레인”과 연결시킵니다. “감춰진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 강하게 흔들고 또한 체로 까불러서 정화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로스네르와 같은 사람들은 이 단어들의 근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낱말은 태양의 밝음을 위해서 요구되어지는 순수한 것들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단어의 뿌리는 태양의 밝기를 지탱해 주는 그 선명함 그리고 그 밝음이 입증되고 인정되는 순수함을 의미한다.” 우주에 있는 그 어떤 빛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태양 빛을 순수함이라 한 것입니다.   

   이 낱말은 깨끗함 혹은 투명함의 뜻보다는, 불순물을 제거하여 정화되고 키질하여 껍질은 떨치고 다른 것과 섞이지 않은 알맹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낱말은 습관적으로 “혼합하지 않은” 혹은 “섞이지 않은”이라는 단어들과 병행하여 쓰입니다. 그리스 사람 메넥세노스는 자국민과 이웃 나라들을 비유하는 연설에서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우리 도시의 숭고하고 관대한 특성은 뿌리가 확고하고 건전하며, 야만 민족들을 혐오하는 정신도 부여되었습니다. 우리는 야만인의 혈통에 섞이지 않은 순수 혈통의 그리스인이기 때문입니다.우리와 동거하는 펠롭스, 카드모스, 아이집투스, 다나우스, 그리고 여러 타입의 수많은 사람들은 명목상 그리스인이지만 본래 야만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야만인의 혼합이 아닌 순수한 그리스인입니다.” 비록 다른 문화 사람들과 섞여 살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자신들의 전통과 특성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순수함입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고대 로마인들의 장례 의복을 설명할 때 “에이리크리네스”를 사용합니다. 그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여인들이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새하얀 옷을 입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동방박사들이 음부와 어둠의 권세를 대적하여 스스로를 빛나고 밝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죽은 자의 시신을 흰색으로 입는 것처럼 친척들도 이 색을 입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에 대하여 로마인들의 정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영혼을 그렇게 희게 장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육체를 하얗게 장식하는 것입니다. 여인들은 그 영혼을 밝고 순수한 상태로 보내기를 원합니다. 염색한 의복은 너무 비용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지나치게 정교히 합성되었습니다. 색을 넣은 옷들은 속임수의 색깔이며 속임수의 옷입니다. 그리고 검정색이 염색을 하지 않은 자연의 상태일지라도 어두운 색과 결합하면 중압감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흰색만이 순수하고 혼합되지 않고 염료에 오염되지 않으며 모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흰색은 시신을 매장할 때 죽은 자를 위해 가장 적절합니다. 죽은 사람은 단순하고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육체에서 나온 후에는 물들여 만든 얼룩에 비교될 것입니다.” 로마 사회에서도 순수함이란 다른 것과 섞이지 않는 그 원래의 것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필론은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면서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모세는 일찍이 이집트의 모든 학식을 배워서 철학의 정점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는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었습니다.  그는 존재하는 만물에는 능동적 원인과 수동적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능동적 원인인 하나님은 우주의 지력 (知力)이시며, 완전히 순수하고 완전히 혼합되지 않고, 덕보다 우월하고 과학보다 우월하며, 심지어 추상적인 선이나 추상적인 아름다움보다 더 우월합니다.” 그는 하나님은 창조물인 인간의 그 어떤 속성과 섞이지 않은 완벽한 순수함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의 중심적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이전의 삶의 태도인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하며, 이제는 완전히 그리스의 가르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쓴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그리스도인은 비록 세상에 살지만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행위는 세상의 어떤 것에도 섞이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에 완전히 순결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세상에서 처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위와 행위의 근본이 하나님께 뿌리를 내려야합니다. 신앙인은 아름답게 보이고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의 것들에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로 변조되거나 더럽혀 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순결입니다. 바울은 “너 희는 이 세 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철이 용광로 속에 던져져 녹이 없어져 전체가 벌겋게 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사람은 부끄러운 성품이 없어져 순순한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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