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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하늘향한 책읽기] 팀 켈러 “부활을 입다”

하늘향한 책읽기, 팀 켈러, [부활을 입다], 두란노, 2021

개인적으로 책을 선택할 때에 책제목에 영향을 받을 때가 많다. 책제목은 그 책 전체의 내용을 압축 또는 대변해 주는 것이며, 전체 주제에 대한 핵심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책제목만 보고서 아예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책내용을 거들떠보지 않을 때도 있고 책제목에 너무 마음이 끌려서 책을 집어 들어 구입할 때도 있다. 

독자도 이러한 데 책을 쓰는 저자나 출판사에서 책제목을 정하는 것은 정말 피를 말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너무 평범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과장해서도 안 된다. 더욱이 해외에서 출간한 책을 번역서로 내놓을 때에 이 고민은 더욱 배가된다. 번역서의 제목은 원어의 원제목의 의미를 변질시키지 않으면서도 한글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어감도 같이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번역서는 아무래도 한국인의 정서나 문화 그리고 현실적인 기호까지 생각해야 하고 번역하게 될 때의 뉘앙스와 이해정도 등을 심사숙고하고 고려하여 제목을 선정하게 된다. 이런 이중적인 어려움까지 통과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알기에 번역서가 나오면 항상 원제목을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많은 책들은 거의 제목을 직역하여 책제목으로 출간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에 팀 켈러 목사가 내놓은 책을 출판사에서 [부활을 입다]라는 제목으로 내놓았다. 그런데 원제목이 “Hope in Times of Fear”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직역하면 ‘두려움의 시대 속의 소망’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이를 [부활을 입다]라고 하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책제목으로 출간이 된 것이었다.   

궁금증이 발동했다. 원서를 출간한 저자와 출판사가 심혈을 기울여서 정한 책제목을 저렇게까지 바꾸어서 출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원제목으로 보았을 때 요즘처럼 두려움의 시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부활이야말로 온전한 희망(hope)이라는 것을 충분히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부활을 입다라는 것으로 표현하였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있기에 한국독자들에게는 [부활을 입다]라고 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를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니 보물찾기 하듯 더 몰입해서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저자는 2002년에 갑상선암에 걸려 투병을 한 경험이 있다. 그 후 20년이 지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책을 쓰던 중에 저자는 더 위중하며 치료과정도 훨씬 까다롭다는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터진 팬데믹은 인생의 암흑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죽음이라는 문턱에 가장 가까이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체험하게 되었고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이 경험이야말로 말 잘하고, 글 잘쓰던 저자로서의 경험치가 아니라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암흑 가운데에서 과연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가를 저 밑바닥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정리하고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이전 책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팀 켈러의 본심을 독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전해주고 들려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책 속에서 묻어 나온다. 책 중간 중간에 정말 부활의 소망이 없었다면 어쩔 뻔 하였을까에 대한 본인의 안도의 한숨과 깊게 들이쉬는 날숨과 들숨을 느꼈다고 하면 너무나 감상적인 이야기가 될까. 

췌장암으로 고통 중에 집필하는 가운데에서 여전히 충분한 실례와 예증은 설득력을 배가시켰다. 이런 강력한 변증 가운데 토설하는 “그분(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셨기에 결국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와 니체의 세속 이론이다.”라는 말에는 더부룩한 속을 일갈하는 강력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예수님의 부활하셨음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을 때 그 부활의 능력을 입게 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새 자아를 입게 된다. 

책 제목 정말 잘 지었다. 부활을 입으신 예수님은 어떠한 종교적 스승도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 떠나버린 이 시대에 예수님만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죽음은 예수님의 시종이 되어 예수님을 섬긴다. 그것이 부활을 입은 자의 능력이다. 그렇게 부활을 입게 되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온전한 희망과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의 부활을 덧입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신윤희 목사(하늘향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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