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 거룩한 허비(요12장 1-8)_밴쿠버교회협의회 회장 김시동 목사(세계를품은교회)

[설교단상] 거룩한 허비(요12장 1-8)_밴쿠버교회협의회 회장 김시동 목사(세계를품은교회)

거룩한 허비(요12장 1-8)

밴쿠버교회협의회 회장 김시동 목사(세계를품은교회)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 목요일 밤에 간절히 기도 하신 내용의 첫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 되는 것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반응으로 그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 벤쿠버에 한인 교회들이 함께 모여 하나가 되어서 성금요예배를 드리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각 교회에서 하나 되기 위해 같이 참여 해주시고 순서를 맡아 주신 각 교회 목사님들, 장로님들 성도님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의 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예배를 위해 시온선교합창단의 찬양은 우리의 영혼을 울리고 그 고난의 십자가를 더 찐하게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마가의 다락방처럼, 나사로의 집처럼 하나님께 장소를 드려 같이 예배 할 수 있게 예배장소를 제공하신 밴쿠버 순복음교회에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성금요일 모여 고난의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하지만 이 고난이 끝이 아니라 우리는 생명의 부활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더욱 감사하 고 절망 중에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모든 사명을 마치시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 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시려 가실 때, 엿새 전에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3킬로 정도 떨어진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마지막 일주일을 예루살렘에서 고난 주간을 보내시기 전 한 주간을 베다니에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나사로의 집에 거하셨는데,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졌습니다. 그때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 앞에 붓고 여자의 가장 소중한 머리털로 발을 닦았습니다.

그러자 그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습니다. 참 좋은 냄새였죠. 아름다운 향기가 진동한 것입니다. 그 향유 냄새가 집 안에 가득 했습니다- 이 냄새는 사랑의 냄새였고, 헌신의 냄새 였습니다. 자신을 위해 희생 하실 예수님의 발을 보며 아마도 눈물로 향유를 붓고 닦아 드렸을 것입니다.

이 때 제자 중 하나인 가롯유다가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는냐? 라고 하였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1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 하루 품삯을 150불이라 고 하면 4만5천불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일 년 동안 벌어야 하는 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죠. 엄청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한 가롯 유다는 진짜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심 때문 이었습니다.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 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같은 이야기에 대한 다른 복음서는 이렇게 또 말합니다.

마26장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막14장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 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요한복음에는 가롯 유다가, 마태복음에는 제자들이, 마가복음에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3백 데나리온 되는 향유를 붓자 가롯 유다가 ‘너이거 왜 허비해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라고 말하자, 이에 동조하는 제자들이 분개하여(화를 내며) 같이 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이야기를 들은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들도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화를 내며 왜 향유를 허비해? 라고 또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가롯 유다에서 시작된 말이 제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 갔고 같은 마음으로 이 여인을 비난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참 웃긴 것이 이 향유의 주인 마리아였고, 마리아가 주님께 부어 드린 것이었습니다. 이 향유는 가롯유다의 것도 아니고 제자들의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 들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정말 사랑한 마리아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것도 아닌 것에 흥분하고 있고 말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께 드린 것을 감사하고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질투하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전통적으로 여인들이 향유를 결혼 지참금으로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평생 모은 결혼 자금 이었던 것이죠. 그것을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것, 소중하게 여겨 온 이 향유를 부어 드린 것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결혼 자금인 300데나리온(4만 5천달러)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그 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허비하냐고 난리가 난 상황입니다.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돕지? 더 좋은 일에 쓰지 왜 허비 하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것이 아닙니다. 1달러도 그 들의 것 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난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나를 사랑하여 내게 거룩한 허비를 하였다. 이 부은 향유는 돈을 부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에게 부은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을 알고 그 것이 너무 감사해서 내 장례 를 준비한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내 생명을 아낌없이 허비하는 것을 알고 이 여인도 향유를 허비한 것이다. 거룩한 허비, 거룩한 낭비를 한 것이다. 제자라는 너희들이 어떻게 내 마음을 이리도 모르니? 나는 너희를 위해 생명을 줄꺼야. 하나님의 아들인 내가 죄도 없이 너희를 살리기 위해서 내 몸을 찢을 것이고, 창에 찔릴 것이고 내 목숨을 너희에게 부을 꺼야.

너는 3백 데나리온 하고 니 생명을 바꾸겠니? 난 너를 위해 내 살을 찢고, 가슴을 찢고, 피를 흘려 너를 사랑할 거야. 너희도 이 여인처럼 나를 사랑해 줄 수는 없겠니? 너희에겐 가난한 자 들이 항상 있지만 나는 이제 죽으러 간다. 나는 너희 곁에 이젠 있을 수 없어! 라고 자신이 3년 반 동안 밤낮으로 가르치고 함께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인생을 살다보니 몸이 아프고 병이 들면 힘들지만 약을 먹는다든 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날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 들에게 믿던 사람들에게,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여행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가르치고 같이 기도하던 사람들이 배반을 하고, 떠났을 때의 그 상처와 아픔은 정말 힘들고,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적 고난만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고난, 배반의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찢어지는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거룩한 허비를 하신, 자신의 생명을 부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우리가 가롯 유다처럼, 제자들처럼, 주변의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허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허비 하셨습니다. 거룩한 허비를 하셨습니다

.

그 사랑을 안다면, 그 예수님의 허비로 우리가 지옥의 백성에서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데 그러면 주님께 못 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의 시간? 나의 마음? 나의 꿈? 나의 물질?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우리는 허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케냐의 선교사로 10년을 사역 할 때 자희 사역지의 마사이 전사 모란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카테테마이 교회에서 전사 청년이 나와서 눈물로 예수님 만난 이야기를 간증하였습니다. 마사이 전사 모란은 1년 동안 타부족하고, 그리고 여자하고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룰인데 그 규칙과 전통을 깨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고 눈물까지 흘린 일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하면 전사의 직위도 박탈당하고 집안은 온 동네의 수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그 전사가 그 문화와 전통 을 깨고 예수님을 간증했을까요? 많은 여자들 앞에서, 외국인이 선교사 앞에서? 문화와 전통을 넘어, 자신의 수치 집안을 욕 먹이는 수치를 넘는 예수 님을 만나 자의 삶이기 때문에 거룩한 허비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은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문화도 넘고, 전통도 넘어서고 자신의 꿈과 계획도 주님 께 과감히 드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은 가치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진짜 만난 사람은 사람들의 눈치와 말에 흔들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예수님이 먼저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습니 다. 거룩한 허비를 과감히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릴 위해 자신의 낭비를 거룩한 허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625 한국 전쟁 당시 실화입니다. 눈이 수북이 쌓이도록 내린 어느 추운 겨울날! 강원도 깊은 산 골짜기를 찾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 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6.25사변을 맞아 1.4후퇴하는 치열한 전투속에서 한 미국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 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 울음소리였습니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 소리는 눈구덩이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눈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또 한번 놀란 것은 흰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 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는 사실 이였습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 덮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않은 채 얼어 죽고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병사는, 언 땅을 파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 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 가 자기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날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 기하고, 그때 언 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무덤를 찾아온 것이 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 눈이 수북이 쌓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 을 두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워냈습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옷으 로 무덤을 덮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덤위에 쓰러져 통곡을 합니다.

“어머니, 그 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이 만큼 추우셨어요? 어머니 그 날 얼마나 부끄러우셨어요? 이 만큼 부끄러우셨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어요? 이 만큼 고통스러우셨나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옷이 다 찢겨지고, 온 몸이 찢기시고, 손발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에 아픔 을 당하시고 옆구리는 날카로운 창에 찔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 문에 고통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예수님 그 날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나요? 예수님 그 날 얼마나 창피 하셨나요? 예수님 그 날 얼마나 속상하시고 마음이 아프셨나요? 예수님 그 날 얼마나 아프셨나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그 고통과 아픔 과 창피함과 마음의 찢어지는 수모를 참아 내셨습니다. 생명을 다 부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거룩한 허비를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그 분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감사합시다. 우리도 그 귀한 생명을 허비하신 주님께 우리의 삶을 부어 드립시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 삶에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을 담당하시고 죽음으로 생명을 주신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시며 죽으셨지만 또한 3일 만에 부활하시어서 우리의 부활의 예표가 되시고 영광이 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왕이시며, 생명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허버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룩한 허비를 하셨습니다.

오늘 그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성금요일 보내시고 또한 부활의 주님을 기다리며 찬양하는 우리가 됩시다.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