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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내 발의 등, 내 길의 빛(시편 119편 105)_오덕준 목사(PEI은혜한인교회)

내 발의 등, 내 길의 빛(시편 119편 105)

오덕준 목사(PEI은혜한인교회)

인생을 살아가면서 또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우리에게 늘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삶속에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때로는 우리는 지금 이루어지는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내 결정인지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같았는데 지나고 보면 그냥 일이 되려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때로는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인생의 큰 어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의문에 응답을 얻기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금식기도, 작정기도까지 해보는데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이런 의문에 빠지곤 합니다. “내 믿음이 부족한가?” “하나님은 내게 별로 관심이 없으신가?” “하나님이 과연 살아계실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도대체 어떻게 나를 인도하고 계신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인생길이 너무나 불확실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도 인생길은 마치 칠흑같이 어둡다고 말씀합니다.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성경은 세상을 어둡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어둡다는 말씀의 의미중의 하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불확실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로 가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우리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고 살고 있지만  어떤 것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정보가 넘처나지만 정답을 모르는 세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정확한 것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어서 마치 캄캄한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인생들은 길을 찾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해 왔습니다. 우리는 효율적이고 신속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선정하고 경로를 찾을 때 효율적인지, 그리고 신속한지, 이두 가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통제 가능하고 파악 가능한 정보를 원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목적지를 찾아내고 그곳으로 정확하게 이동하는 것, 인류가 발전시켜 온 과학기술 중 많은 것이 이 목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자동항법장치나, 내비게이션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종류의 과학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점점 더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속에서도 하나님께도 이런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서 제가 언급한 신앙의 질문들을 쏟아내는 데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

본문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이끄신다는 의미로 그분의 말씀을 등과 빛에 비유합니다. 그것도 그냥 등과 빛이 아니라 “내 발의 등” 이고 “내 길에 빛”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발의 등”이라는 표현이 독특합니다. 어둡다고 해서 자기 발에 등을 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발에 등을 달면 자기가 서 있는 자리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시편 기자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발의 등”으로 비유했을까?

  ‘발의 등’이라는 표현은 말씀이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길의 빛’ 이하는 표현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는 뜻, 즉 등대와 같은 역할

119편은 말씀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제입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19:1-2)

이 말씀에서 ‘복’은 ‘에셰르’라는 단어인데 ‘아사르’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똑바로 가다’, ‘성공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복인은 하나님을 향해서 똑바로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앞에서 시편 119편은 ‘말씀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따라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반대로 불의한 사람은 기준이 흔들리거나 모호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인도를 기도의 응답 또는 꿈같은 신비한 방법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때가 많습니다만 하나님은 대다수의 우리의 질문에 말씀을 통해 응답하시고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인생길의 도움정도로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의 길을 수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의 인생의 길을 바꾸시고 고쳐주십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좋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때로 고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발의 등’ ‘길의 빛’ 이라는 말씀을 아무생각 없이 받아들이면 하나님에게 ‘지도’를 요구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와 경로를 찾듯이 자기 인생 전체를 한 장의 지도처럼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어내는 정보 정도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세 검색!”

  “이런 다음 달에 시험 떨어지네? 경로변경!”

  “나는 누구랑 결혼하게 될까? 상세 검색!”

  “어? 얘랑 결혼해? 경로 취소!”

이런 걸 원하는 겁니다. 정확하고 신속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경로를 원하는 것이죠. 쓸데없이 돌아가지 않게 가장 빠른 지름길을 알려주고, 엔딩까지 한 번에 다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목적지와 가는 길이 전부 나와 있는 지도처럼 속 시원하게 미래를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보여 주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되었을 당시의 등의 밝기는 어땠을까요? 혹시라도 지금의 led삼파장 램프 같은 것을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등불은 별로 밝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가 본문을 기록하면서 생각한 빛과 등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빛과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범위가 생각보다 좁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서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사주를 보고,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궁합을 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를까요? 제 아무리 ‘넘사벽’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이 다음해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범위를 ‘발의 등’과 ‘길의 빛’ 정도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지만 발의 등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불을 바싹 갖다 대었을 때 보이는 만큼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촛불을 들고 밤길을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자기 발도 잘 안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실까요?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왜 이렇게 한 걸음씩 인도하실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함께 하는 것, 즉 동행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함께 하는 것, 같이 걷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아마 식량 문제였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황량한 광야에서 행군만 하고 있으니, 어디서 식량을 조달하겠습니까? 그때 주님이 주신 것이 만나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두셨다면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주셨겠습니까? 종합 선물세트를 가득 채운 컨테이너를 떨어뜨리셨을 것입니다.

 “자, 한 달 치 먹을 것 투하한다. 깔리면 끝장이니 조심해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딱 하루 치 분량만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것 때문에 불편해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찌질하게 이거 뭐야? 이왕 줄 거 곱빼기로 화끈하게 내려 주지!”

하지만 며칠 먹을 것을 미리 챙겨 놓으면 다음 날 어떻게 되었나요? 썩어서 버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매일 그날 하루 먹을 분량만큼만 내려 주셨어요. 하나님이 소심하고 쪼잔하신 분이라 그러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분의 초점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오늘 쓰지 못할 것, 먹지 못할 것은 의미 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면 다른 것은 의미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지시하는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면 의미없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바로 “그것만이 내 세상” 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에 왕창 모아놓고 그것이 떨어질 때까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은혜를 공급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가르치기 원하십니다. 발의 등이 비추는 만큼만 내디디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길 바라십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접해 와서 익숙하다는 이유로 성경을 아무 생각 없이 대합니다. 우리가 깨어 집중하지 않으면,비록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도,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매뉴얼이나 설명서, 문제가 생겼을 때 찾아보는 지침서 정도로 취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시는 한 걸음에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을 비추어 주십니다. 동행하기 원하십니다. 언제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그분을 의지하며 걸어가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걷다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닙니다.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앞일을 알 수 있는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의 은사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오랬동안 함께 동행하면 서로를 알게 됩니다.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다. 그것은 마치 결혼생활같은 것입니다.

창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이 말씀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 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하나님은 오랜 동안 하나님과 동행해왔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숨기지 않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나와 가나안땅에 이르기까지 받은 훈련은 동행의 훈련입니다.

아브라함은 동행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신뢰하며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 발자국씩 인도를 받아 걷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한 발자국씩 받아야 되니 하나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인생길에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매사에 주님의 말씀대로 걸어갔고 지나고 보니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책없어 보였습니다. 도무지 인생의 계획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무모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가장 안전하고 온전한 인생, 놀라운 성취를 이룬 인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사는 사람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세상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능력의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동행이라는 방법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의 길을 걷는 법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그 배움이 비록 당시에는 답답해 보여도 종국에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며 가장 아름답고 풍성한 인생의 길을 가는 길이 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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