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본것같은 성지순례] 가이사랴 (Caesarea)

가이사랴 (Caesarea)

예루살렘에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서쪽 룻다를 거쳐, 욥바를 품고 있는 텔아비브를 지나 해변길(Via Maris)과 6번도로를 통해 가이사랴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 경로를 따라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은 사도 베드로가 룻다에서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치고(행 9:34),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린 후(행 9:40), 피장 시몬의 집에서 환상(행 10:9-16)을 보고 가이사랴의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을 따라 항구도시 가이사랴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원전 25년부터 기원전13년까지 약 12년 동안 헤롯대왕에 의해 설립된 도시 가이사랴의 원래 이름은 스트라토스의 망대였고, 이곳은 페니키아 사람들이 살던 곳이며 그리이스인들의 무역 거점이었다. 이 항구주변으로는 샤론평야가 있어, 풍요로운 곡식 생산과 더불어 최고의 해안도시로, 헤롯의 후원자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Augustus Caesar)에게 헌정하는 도시라는 의미로 가이사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유대 역사 학자였던 요세푸스 플레비우스에 따르면, 이 도시는 오거스투스(Augustus)의 헬라식 이름 “세바스토스”(Sebastos)라 이름하기도 했는데, 로마의 동쪽 지중해에 속한 항구도시 중에 가장 거대한 항구와 성벽이 있었던 도시였던 것이다.

기원전 4년 여리고에서 헤롯대왕이 죽은 후, 그의 남겨진 아들 중 한명인 아켈라오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판단할 때 그는 무능했고, 서기 6년 분봉왕에서 해임되자, 사마리아, 예루살렘, 이두메아, 욥바 그리고 가이사랴는 로마제국 안으로 흡수가 되었다. 이 때부터 이 지역들은 통틀어서 ‘유대 지방’ (Judeau province)이라 불리게 되었다. 헤롯의 항구도시는 새로운 로마 지방의 수도가 되었던 것이다. 유대가 제국 안으로 편입이 되었을 때, 로마인들은 유대 지방의 수도였던 가이사랴로부터 인구조사를 명해 세금을 부과하려 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눅 2:2)

서기 6년 가이사랴는 유대지방의 로마총독 관저와 10군단의 본부가 있었다. 가이사랴는 서기 6년부터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기까지 6백년간 로마가 유대지방을 다스리는 수도역할을 감당했고, 성경에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 벨릭스 (Felix, 행 23장), 베스도 (Festus, 행 25-26장) 총독들이 가이사랴에서 일을 했다. 특히 1961년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이 신전 건물을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바칩니다”라고 적혀있는 석판이 발견됨으로써 본디오 빌라도가 실제 역사상 존재했던 인물임이 성경 이외의 자료에서도 증명 되었던 것이다. 또한 전도자 빌립 집사가 머물렀던 곳이며(행 21:8),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 때 가이사랴 항구를 통해 안디옥으로 갔으며(행 18:22), 후에 로마로 압송되기 전 2년 동안 억류되었던 지역이었다 (행 25:4).

기독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확산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 가이사랴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은 성령이 이방인이었던 백부장 고넬료에게 임했던 것이다.  사도행전 10장 3절에서 48절에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행 10:44-48)

     고넬료(Cornelius)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군대의 지휘관인 백부장으로, 순수 로마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에 힘썼던 사람이었다.  최초의 교회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교회였고,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부정한 이방인들과 교제를 꺼려했는데, 특히 식탁 교제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신실한 유대인이었던 베드로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기도 중 환상을 통하여 그가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성령이 말씀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강림하셨다. 성령을 받은 고넬료에서 물세례까지 준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더 머물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이방인 신자 고넬료와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을 것이다(행 10:48). 이방인에게 성령이 강림한 고넬료의 사건은 유대교로부터 초대교회를 분리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고넬료는 유대교의 어떤 율법도 지키지 않던 자였기 때문이다.  레위기에 기록된 정결한 음식만 먹어야 되는 음식법이나 할례 등을 따르지 않는 이방인이었지만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 크리스찬으로서 믿는 유대인들과 교회 안에서 동등하게 여겨진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유대인들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부정한 것으로 가득찬 이방인의 도시 가이사랴에 하나님의 은혜가 찾아왔다. 부정하게 인식되었던 이방인도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증명됨으로써 가이사랴는 이방 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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