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하늘향한 책읽기하늘향한 책읽기,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2020

하늘향한 책읽기,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2020

하늘향한 책읽기, 마크 브로갑, 짙은 구름, 더 깊은 긍휼, 두란노, 2020

책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마음의 안정을 찾거나 심심풀이를 찾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이 몰랐던 부분을 배우고 싶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집필한 저자와의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자를 통해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뿐만 아니라 저자만이 경험했던 삶의 강력한 체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다.  

특히 저자의 삶 속에서 깨닫고 익혔던 통찰을 책을 읽는 동안 지면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배우고 알게 될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저자에게 특별히 허락해 주신 이 땅을 살아가는 통찰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마음에 늘 감사하다. 제한된 지면이지만 어떤 한 분야 또는 영역에 대한 저자만의 통찰을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지면을 통해서 저자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느 새 부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 독서의 유익이리라. 

이 책의 저자인 마크 브로갑 목사는 그리 대단한 이력이 있거나 특별한 재능으로 무장한 잘 나가는 목회자는 아니다. 그저 가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던 평범한 목회자인 저자는 출산 예정일을 며칠 앞둔 아내의 배속에서 태아가 죽는 아픔을 경험을 하게 된다. 폐부를 찌르는 슬픔과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격통을 느끼며 하나님을 향하여 쏟아져 나오는 탄식과 속 깊은 애통을 경험하게 된다.  

이 땅에서 펴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꽃과 같았던 죽은 아기를 묻는 아비의 심정이야말로 참으로 참담하고 애간장을 끊어내는 애통일 수밖에 없다. 짙은 먹구름과도 같은 애통의 시간이 닥쳐왔을 때 저자는 자신이 목회자였지만 어떻게 이런 애통을 대해야 하고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짙은 구름(Dark Clouds)’이라는 책 제목처럼 회색 빛 그 가장 깊은 심연에 처박힌 듯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 가지 이미지를 보여준다. 투명한 액체가 가득한 컵 밑에 뿌연 침전물이 있는 컵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컵을 가만히만 둔다면 속이 투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컵을 흔든다면 금세 침전되었던 것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다. 저자는 고난이야말로 우리 삶이라는 컵을 흔들어대는 것이라고 한다. 고난이야말로 망각하고 있거나 숨겨 온 침전물들을 휘젓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짙은 구름같은 그 때에 저자는 시편을 다시금 펴보게 된다. 시편의 삼분의 일이 애통의 시편이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애통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찾기 시작한다. 누가 애통을 좋아라 하겠는가. 누가 애통을 반가운 손님 맞이하듯 맞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 애통은 우리의 슬픔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행위로 변할 수 있음을 시편을 통해 배우게 된다. 애통은 찬양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과 실망을 통과하여 찬양으로 행하는 통로가 됨을 깨닫게 된다.

‘애통의 은혜’라는 말이 있다. 과연 애통이 은혜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현대 교회에서는 애통이 은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웃는 가면을 모두들 쓰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속에서는 울고 있지만, 겉의 가면은 늘상 웃음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속은 썩어버려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애통함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거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저자는 자신의 애통의 순간을 통해 한 가지 통찰을 독자들과 나눈다. 그것은 바로 ‘통로’라는 단어이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애통을 통해 애통의 역할은 바로 통로가 됨을 역설한다. 애통에서 시작하지만 그러나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애통은 멈춤이 아니라 다른 것과 연결되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생의 시련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통로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저자를 통해 ‘애통은 통로’라는 명제를 얻었다. 짙은 구름 같은 애통은 결국에는 더 깊은 긍휼의 통로가 된다. 애통의 통로에 들어서면 우리는 예수님이 보이고, 십자가의 고통이 먼저 보이게 되지만 또한 같이 울고 계신 하나님을 보는 통로로 연결되었음을 보게 된다. 애통은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그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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