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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COVID-19 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라”(요한복음 20:19-23)임덕규 목사(밴쿠버한인교회)

“COVID-19 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라”(요한복음 20:19-23)

밴쿠버한인교회 임덕규 목사

지금 우리 세대는 COVID-19으로인해 죽음의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백신을 맞고 이 두려움을 이겨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종류의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이 두려움은 다시 우리들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느꼈던 사람들은 우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두려움에 문을 닫고 숨어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움에 문을 닫고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 가셔서 세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을 살펴보며 이 시대를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하신 말씀이 19절에 나와 있습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인사말에서 ‘평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샬롬’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왕하 5:21), 헤어질 때(삼상 1:17, 행 16:36), 이웃을 방문할 때(마 10:12) 등 일상 생활에서 ‘샬롬’하며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 인사는 일상적인 인사의 범주를 넘어 세상이 가져다주는 평안과는 다른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평안입니다.

( 14:27, 개정)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약속하신 평안은 “나의 평안” 즉, 주님이 누리시는 평안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평안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누리는 관계의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 5:10). 우리는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을 통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이며, 세상이 줄 수도 없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가진 사람만이 복음을 알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화) 어느 마을에 암탉 두 마리를 키우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가난했지만 예수님을 믿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부인의 닭들이 뒷집의 채소밭에 들어가 밭을 잔뜩 헤쳐 놓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밭주인은 닭들을 붙잡아 날개를 비틀어 담 너머로 던져 버렸습니다. 얼마 후 죽은 닭을 발견한 부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여러분이 이 여인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고약한 사람이 있나, 생명을 그렇게 하찮게 여기다니.’라며 욕을 하며 닭 값을 받으러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참자 참아.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너! 나같이 좋은 사람 만난 걸 복으로 알아.’라고 하며 참으시겠습니까?

이 여인은 마음을 가다듬고 참았습니다. 그리고 그 죽은 닭으로 통닭구이를 만들어 그 중 하나를 들고 밭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부인은 먼저 닭이 밭을 망쳐 놓은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를 하고 가져온 통닭구이를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따라갔던 아들이 물었습니다. “근데 엄마, 그 아저씨 왜 얼굴이 그렇게 빨개졌어요?” 그녀는 닭 두 마리를 잃었지만 이웃을 얻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사람,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이 여인처럼 이웃을 얻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가진 사람은 복음의 지혜를 갖게 되어, 자기 이익을 위해 살지 않고 한 사람, 한 생명을 얻기 위해 살게 됩니다. 이 여인의 행동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잠언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11:30, 개정)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COVID-19시대, 두려움의 시대에 우리 모두 주님의 평안을 받아 사람을 얻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에게 주님의 평안을 선물해줄 수 있길 소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두번째로 하신 말씀은 21절에 담겨 있습니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사복음서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보내심 받은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사명을 부여받은 사도들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명을 완수하신 것처럼 그들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사명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사도들은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졌습니다.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12 사도의 순교일지를 기록했습니다.

베드로 –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죽을 가치가 없다며, 거꾸로 달리는 십자가형을 자처했습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 헬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X자 십자가에 3일 간 달려있다가 순교했습니다.

도마 – 인도에 가서 전도하던 중 현장에서 군인들이 던진 창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삼위일체’란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초대 교부 터툴리안(Tertulian)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제자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며 사명을 완수하여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기 전에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보이셨습니다. 이 상처들은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흔적입니다. 주님이 이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의도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했지만 부활하여 승리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결국은 부활하여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 상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부활을 믿고 제자들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준 사명은 사도에서 속사도로 계속해서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도 똑 같은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코로나19로인해 전도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불러 복을 주시는 이유는 반드시 당신을 내보내 복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감정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영적인 소비자가 아닙니다. 사명받은 교회는 개인으로서나 한 몸으로서 사명 가운데 서도록 훈련하고 격려하는 교회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는 자란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여, COVID-19으로인해 죽음의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사명은 우리 힘만으론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세번째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력으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승천하시전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1:8).”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주님은 제자들을 사명의 길로 인도하고 돕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15-17, 25-26). 우리는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약속하신 성령을 구한 것처럼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되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고후 5:17, 개정)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날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장면은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하신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주신 것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만물을 돌볼 책임을 가졌던 것처럼(창1:27, 28),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 새롭게 창조된 사람은 영적인 책임을 받았습니다(마 28:16-20). 이 새 창조는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할 능력의 기반입니다. 또한 인간적인 지혜나 말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사명을 수행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고전 2:1, 4).

이 성령님은 죄를 용서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곧이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용서는 복음의 위대한 복입니다. 그렇다면 ‘죄 용서’란 무엇을 말할까요? 이는 우리 죄를 완전히 덮으시고(행 3:19), 우리 잘못을 계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고후 5:19). 용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희생에 기초합니다.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어 우리가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이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말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주님을 닮아 용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는 힘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죽음의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평안, 즉 하나님과 누리는 평안을 선포하시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COVID-19이 주는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평안을 누리며,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교회 홈페이지 www.vhc-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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