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본것같은성지순례] 하솔(Tel Hazor)

하솔(Tel Hazor)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 죽이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수 11:10-11)

이스라엘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에서 관리하는 세계문화 유산인 하솔을 겨울에 방문하면 북서쪽에 보이는 눈 덮인 헐몬산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곁들여 감상할 수 있다. ‘하솔왕 야빈은 참 좋은 곳에서 살았구나!” 라고 부러운 생각이 들 정도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가나안 시대의 도시 국가 중 가장 큰 규모였던 이곳은 30 에이커의 상부 도시와 175 에이커에 달하는 하부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통해 레바논의 베카 골짜기를 거쳐 유프라데스 강변의 바벨론까지 이르는 고대 무역로에 위치해 있던 하솔은 카라반 상인들이 두로와 시돈에 이르기 전 거치는 곳이다.  갈릴리 바다 북쪽 17 km에 위치한 하솔, 편리한 교통과 비옥한 평야 지대로 말미암아 3500년 전 적게는 약 2만 많게는 4만명의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했던 상업 도시로, 동시대의 여부스 (예루살렘)의 인구가 약 2천명이었음을 비교할 때 얼마나 큰 도시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하솔왕 야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리더쉽 아래 가나안 땅을 두고 정복전쟁을 벌일 때, 갈릴리의 모든 왕들을 연합하고 통솔하여 이스라엘에 대적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이 전투가 중요했던 이유는 갈릴리 지역의 대표 도시를 점령함으로써 남쪽 아라바에서부터 북쪽 헐몬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역임이 확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메롬 물가에 모인 가나안 사람들을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고(수 11:7), 갈릴리 북쪽의 도시들만 남기고 전쟁에 앞장 섰던 하솔은 불태워졌다.

하솔에서 발견된 주상과 바알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수 11:13)

히브리대 고고학 교수인 암논 벤 토르(Amnon Ben-Tor)는, “하솔성읍에 큰 불이 났는데, 그 온도는 섭시 1300도에 이르렀다. 흙 벽돌은 불에 의해 바위처럼 단단해졌고, 세라믹 용기는 녹아버렸는데, 그 이유는 궁전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었던 백향목과 올리브 기름 창고에 불이 붙었고 강한 바람이 불어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항아리에 담겼던 밀은 불탄 채로 3400년이 지난 후 20세기에 발굴되었는데, 하솔 왕궁의 터진 현무암과 함께 성경 사건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여호수아에 의해서 파괴된 하솔의 왕 야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불순종 할 때 징계의 도구로 사사 시대에 다시 등장한다.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승이 있어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삿 4:1-3).

여호수아에 의해서 죽었던 야빈이 다시 등장한 이유는 아마도 야빈이 하솔을 다스리는 왕조의 이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야빈의 군대 장관은 시스라였고 그는 이스라엘의 여선지자 드보라에 의해서 처참한 패배를 당하게 된다. 결국 시스라와 야빈은 죽었고 야빈은 역사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기원전 10세기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해변길이 지나가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에 대규모로 성을 건축하게 된다.

가나안 시대의 역사와 이스라엘 시대의 역사를 지닌 하솔에는 석회석 돌로 건축이 된 큰 성문이 존재한다. 식스 쳄버 게이트(Six Chamber Gate)라는 건축방식은 하솔, 므깃도, 게셀, 이 세 개의 성에 크기나 디자인이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성들의 문들이 동일한 정부의 지원을 받은 건축 기술자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건축방식에 대한 설명이 솔로몬의 대규모 건축 사업을 기술한 성경말씀에서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하솔성읍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 궁과 밀로와 예루살렘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왕상 9:15)

솔로몬이 해변길을 방비하기 위해 요새화한 세 개의 성인 므깃도, 게셀 그리고 하솔의 성문은 특이하게도 보통 성문을 방비하기 위한 구조물보다 더 많은 6개를 공간을 만들었다. 즉 성을 더 튼튼하고 강력하게 만들려고 했던 증거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많은 노동력과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에게만 면세 혜택과 노역을 제외해 주었던 솔로몬의 정책으로 인해 이스라엘 통일 왕국은 그의 사후에 르호보암이 통치하는 남왕국 유다와 여로보암의 북왕국 이스라엘로 두 동강이 나게 되었다. 기원전 9세기 아합왕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속했던 하솔이 공성전에 더욱 유리하도록 대규모의 물 저장소를 만들었다. 이 물 저장소는 성읍의 바깥쪽에 위치한 시냇물의 샘과 연결되게끔 아합의 기술자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완성한 작품이다. 즉 전쟁이 났을 경우 성을 지키는 공성전의 기간 동안 도시 안의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 물저장소였다.  하솔을 방문하는 순례자는 45미터 깊이에 이르는 대규모의 물 저장소에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하솔의 장대함을 느끼게 된다. 여호수아의 정복전쟁과 솔로몬 왕의 건축사업의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하솔, 이 도시는 성경이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는 장소인 것이다.

글, 사진_ 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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