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교계뉴스한국 가수 박진영이 주장하는 이상한(?) 삼위일체(1)_양형주 목사(바이블백신센터 원장, 월드미션대 이단상담학교수, 대전도안교회 담임)

[특별연재] 가수 박진영이 주장하는 이상한(?) 삼위일체(1)_양형주 목사(바이블백신센터 원장, 월드미션대 이단상담학교수, 대전도안교회 담임)

[특별연재] 가수 박진영이 주장하는 이상한(?) 삼위일체(1)

요즈음 가수 박진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인기 연예인이자,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CEO인 그가 어느 순간부터 성경을 가르치자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모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임은 “첫 열매들”이란 선교단체의 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문제는 그의 성경 강연이 정통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상당부분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아니, 차이를 넘어서 위험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단순히 유명 연예인이 성경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호기심을 갖고 귀 기울일 단계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깨어 그의 주장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삼위일체에 대한 주장이다.

삼위일체는 수백 년간 역사적 공교회가 피흘리며 지켜온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뤄왔던 교리다. 삼위일체 교리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주요 교리인 계시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이 세워진다. 반면 삼위일체가 왜곡되면 복음의 본질과 진리가 연속적으로 훼손된다. 기억할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천지, JMS,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과 같은 이단 단체들의 상당수는 대부분 이 삼위일체 교리의 왜곡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바로 알고, 바로 세워야 할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교리다.

하지만, 박진영은 최근 <첫 열매들> 채널에 올린 “[오해바로잡기] 삼위일체, 잘못돼서 어려운겁니다”라는 영상에서 기성 정통교회가 가르치는 삼위일체를 모순덩어리로 비판하며, 자신이 이해하는 ‘이상한(?)’ 삼위일체를 주장하였다. 여기서는 그가 영상에서 주장한 것들을 중심으로, 그의 삼위일체 주장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몇 차례에 걸쳐 차근차근 살펴 보도록 하겠다.

먼저, 그가 삼위일체에 대해 주장하는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그의 주장은 크게 11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교회가 가르쳐 온 삼위일체는 하나님을 왜곡시키는 잘못된 렌즈다. 성경은 삼위일체가 말하는 ‘세 인격, 한 존재’가 아니라 ‘두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이름이 아니라 지위와 격을 뜻하는 직함(Status)이다. 성부의 고유한 이름은 야훼, 성자의 고유한 이름은 예수라는 것이다.

셋째, 성경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 말할 때, 이는 삼위 전체가 한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부, 곧 야훼만이 유일하신 최고 하나님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넷째, 존재를 구별하는 최소 단위는 ‘혼(Soul)’이다. 성부와 성자는 각자 고유한 혼과 뜻을 지니며, 아들이 자기 뜻을 아버지 뜻에 맞추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순종’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예수님은 태초 이전에 혼으로 성부 안에 계시다가 태초의 시작점에 몸을 입고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이후 성부가 자신의 영을 부어 아들을 자신과 동일한 ‘하나님’의 격으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여섯째, 초기 교회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A.D. 256년경~336년)는 ‘태어나심’에 집착해 예수님의 선재성을 부인했고, 이를 반박한 니케아 등 정통 공의회의 교부들은 반대로 성경에 분명히 적힌 ‘태어나심’을 덮어버린 채 ‘영원한 태어남’이라는 비논리적 개념을 급조했다는 것이다. 결국 양쪽 모두 성경을 곡해했다는 것이다.

일곱째, 성령은 독립된 인격(혼)이 없는 ‘아버지의 영’일 뿐이며, 고유한 이름도 자기 뜻도 없다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에게는 각각 야훼·예수라는 성함이 있지만 성령에게는 성함이 없는데, 그는 이것을 성령이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본다.

여덟째, 하늘 성소에는 세 개가 아니라 성부와 어린 양(성자)의 ‘두 보좌’만 있다는 것이다. 성령을 위한 세 번째 보좌가 없다는 것은 성령이 독립된 위격이 아니라 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활동력에 불과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홉째, 예수와 성령은 인간을 돕기 위해 보내진 ‘하나님의 두 일꾼’이라는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의식(혼)이 말씀과 대속을 이해하고 믿도록 돕고, 성령은 무의식(영)에 작용해 믿음의 확신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열째, ‘하나 됨’은 존재의 합일이 아니라 ‘뜻과 목적의 일치’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하나 되어도 한 존재가 되지 않듯(요 17:21~22), 성부와 성자의 하나 됨 역시 목적과 사랑의 완전한 연합을 뜻한다는 것이다.

열한째, 결국 그는 테르툴리아누스(A.D. 213년경)의 원래 삼위일체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참된 삼위일체는 ‘한 존재’가 아니라, 구별된 세 분이 동일한 뜻과 목적 안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 이러한 그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삼위일체 앞에 우리는 겸손함과 배우려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겸손은 옛사람들이 세운 전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기다렸다가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분을 내 논리의 크기에 맞춰 잘라 내는 순간, 우리가 붙드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성경이 말하는 데까지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자리에서 함께 침묵하는 것, 그것이 삼위일체 교리를 대하는 바른 자세다. 그렇다면 다음 호부터 그의 주장을 하나씩, 성경에 비추어 살펴보겠다.

양형주 목사(바이블백신센터 원장, 월드미션대 이단상담학교수, 대전도안교회 담임)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